아주경제 김부원·문지훈 기자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사재출연 방식을 둘러싸고 채권단과 동부그룹 간 갈등이 깊어진 가운데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을 위한 금융당국과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동부그룹은 충분히 경영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채권단이 지나치게 일방적인 방식으로 밀어붙인다며 억울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금융권은 더 이상 기업 오너들의 방만한 경영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STX그룹을 통해 쓴 맛을 봤기 때문에 동부그룹의 입장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산은 "동부그룹 약속 이행해야"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동부그룹에 더욱 강력하게 구조조정 이행을 요구할 방침이다. 동부그룹이 채권단이 요구하는 사재출연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지연시키자 더욱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대상이 된 14개 기업 가운데 동부그룹만이 약정 체결을 마무리하지 못한 상황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사재 1000억원을 털어 이 가운데 800억원을 동부제철 유상증자에 사용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동부그룹은 동부제철 자회사인 동부특수강의 매각이 성사되는 등 유동성이 개선되고 있으므로 김 회장의 사재출연 계획을 변경해달라고 채권단에 요구하는 등 입장을 바꿨다.
이에 대해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구조조정 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기업에 확실하게 불이익을 부과하겠다고 강하게 경고했다. 최 원장은 "동부그룹은 당초 시장에 약속한 대로 구조조정을 조속히 추진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며 "자구계획이 충실히 이행되지 않는다면 채권은행을 통해 법규상 정해진 금리 인상, 신규 여신 중단 등 불이익이 확실히 부과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산업은행도 강경한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채권단의 요구는 동부제철 유상증자"라며 "기존 유상증자 약속을 지키도록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금융권이 동부그룹에 유독 강경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이른바 '제2의 STX 사태' 또는 '동양그룹 사태'가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의지 때문이다. 동부그룹의 상황이 'STX의 데자뷰'라는 비관적인 반응까지 나올 정도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동부그룹 측은 '채권단이 지나치게 몰아 붙인다' '가만히 둬도 살아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정작 그대로 두면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게 분명하다"며 "동부그룹 측의 입장과 발언들은 과거 STX의 반응과 똑같다"고 우려했다.
◆은행권 "부실기업 좌시해선 안된다"
단지 금융당국이나 산업은행만의 우려가 아니다. 금융권 전반이 대기업 또는 오너들의 방만한 경영을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최근 은행들의 실적이 급격히 악화되는 결정적인 이유도 기업부실에 따른 대손충당금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1분기 시중은행들의 대손충당금은 2조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산업은행은 더욱 뼈아프다. 지난해 산업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13년만에 약 1조447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대손충당금은 1조7731억원으로 2012년 7825억원보다 9906억원이나 늘었다. 지난해 말 대출채권은 98조1198억원으로 전년보다 6조2447억원 늘었다. STX그룹 계열사들의 경영난이 산업은행을 휘청이게 한 주요 원인이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다른 기업과 비교해보면 오히려 동부그룹에 많은 혜택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기업이 몰락하면 금융권도 손실을 보게 되고 국민 혈세가 들어갈 수도 있으므로 구조조정 진행에 냉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STX나 동양그룹의 사례에서 봤듯 오너들의 독단이 사태를 더욱 키울 수 있다"며 "특히 구조조정 진행에 있어서 정치적인 견해가 절대 반영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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