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묵언수행’중인 기업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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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4-07-13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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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수주소식을 남에게 알리지 말라.”

조선업계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를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수주 소식은 분명 좋은 것일 터이며, 공개하지 않은 수주도 많다고 한다. 일단 숨기되, 그렇지 못할 것이라면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실’만 전달하라는 것이다.

‘저가수주로 인한 수익성 급감’이 시장과 여론에서 조선업계의 현실이라고 굳어지면서 벌어진 현상이다.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거두어도 남는 게 없을 것이라며 의심하고 부정한다고 한다. 신기하게도 현대중공업이 올해 업계 최다 규모인 2조원대의 해양 플랜트 수주 소식을 발표한 지난 11일, 회사 주가는 오히려 떨어졌다. 포털사이트 상장기업 소식난에 올라온 댓글 중 이 소식을 들은 누리꾼은 “2조원 수주 내용이 의심스럽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조선산업이 중국에 이어 일본에도 뒤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궈낸 결과물이었는데도 말이다.

회사 방침이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지만 영업사원들의 사기는 상당히 저하됐다고 한다. 잘한다고 칭찬을 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숨기고 감추려고 하니,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겠느냐는 말이다.

비단 조선업계만 흐르는 분위기가 아니다. 기업들은 요즘 ‘무언수행’중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기업이 잘못했다는 식의 반응이니, 이럴 바엔 아예 입에 오르내리고 않도록 납작 엎드려 있는 게 낫다고 푸념한다.

삼성그룹이 2분기 잠정실적을 시장 예상보다 낮은 수준으로 발표하자 스마트폰 사업의 부진이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며 프리미엄 폰에서는 애플, 저가폰에서는 중국 브랜드에 밀리고 있다고 비난하더니, 노키아와 모토롤라와 같은 몰락의 길을 삼성전자가 밟아 나가고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제기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삼성전자로 인해 한국 제조산업의 붕괴가 시작됐다는 섬뜩한 화두까지 던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이례적으로 해설 자료를 배포하면서까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회사의 설명은 시장에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냈을 때 시장과 여론은 “중소 협력사의 고혈을 빨아먹고 돈을 벌었다”고 분노를 터뜨렸다. 돈을 벌어도, 못 벌어도 기업은 비난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작정하고 때리려고 달려드는 것을 막을 방도는 없다. 정상적인 사람에게도 “잘못한다”고 끊임없이 지적하면 기가 죽어 움츠러들면서 실수를 반복해 결국에는 정말로 “잘못하게 된다.” 잘못한 상황을 목격한 이들은 “내가 말한대로 됐지?”라며 더 비웃는다. 비난을 받은 사람은 문제아로 전락하게 된다.

기업도 사람이 모인, 사람이 움직이는 조직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업을 욕한다고 하지만, 받아들이는 기업인들은 자신이 화살을 맞는다고 생각한다. 비난을 겪는 기업 구성원들은 억울해도 변명할 수 없다. 어떤 말을 해도 두들겨 맞기만 하니, 가슴은 쓰리지만 외면하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이겠지만 기업인들의 사기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한국인의 저력에는 ‘신바람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신바람 문화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격려, 칭찬이었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 우리 기업에게는 응원이 필요하다. 기업의 애로에 귀를 기울여주고 해결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어쨌건 우리 경제 성장의 성장은 기업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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