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대한법률구조공단과 법원 등에 따르면 1991년 충남 보렁시청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던 한모(71) 씨는 얼굴에 하얀 반점이 생겨 온몸으로 번지는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고 진단은 백반증인 것으로 나타났다.
어려운 사정으로 계속해서 일을 해온 한씨의 병은 더욱 심해졌고 백반증은 야외 활동이 잦으면 자외선 때문에 더 심해질 수 있다는 말에 2001년 결국 19년간 일해온 직장을 그만뒀다.
한씨는 백반증 때문에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자 스트레스는 물론 변변한 일자리 찾기도 힘들어 경제적으로도 궁핍해졌다.
그러나 2011년 심사절차가 강화된 후 장애인 등록이 돌연 취소됐다. 보건복지부의 '장애등급판정기준' 고시에 따른 안면부 장애 증상에 백반증이 규정돼 있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이에 한씨는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보령시장을 상대로 장애등급을 다시 인정받기 위한 소송을 냈다.
최근 백반증 환자가 장애인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전혀 없어 백반증 환우 모임에서조차 소송에서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봤지만, 한씨 측은 포기하지 않고 법리와 사례를 수집해 재판에 임했다.
결국 지난 2월 1심 법원은 한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령시가 한씨의 장애등급을 번복한 결정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보령시는 바로 항소했지만 2심을 맡은 대전고법 행정1부도 최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한씨는 얼굴에 나타난 광범위한 백반증으로 오랫동안 일상·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안면장애인'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며 밝혔다.
재판부는 "백반증이 안면장애에 해당하는지를 판정하려면 복지부가 고시한 '장애등급판정기준'이 아닌 장애 관련 법령의 해석에 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복지법 시행령을 보면 안면장애인은 얼굴의 변형이나 기형으로 사회생활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사람"이라며 "백반증도 안면부위의 변형으로 볼 수 있고, '장애등급판정기준' 상의 색소침착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판결은 피고인 보령시가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 확정됐다.
소송을 맡았던 법률구조공단 소속 박판근 변호사는 "이는 행정기관에서 만든 기준에 따라 장애등급에 경직된 판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라며 "이런 판결이 다른 질병 판정에도 일관되게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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