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치연 기자 = 국제 유가 하락 장기화가 현실화되면서 정유업계의 4분기 경영실적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국내 정유사들은 원가 절감과 원유 도입 다변화 등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지만, 현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유사들이 '최악의 4분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을 제기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원유 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두바이유는 지난 1일 배럴당 60달러대에 진입했다. 올 6월과 비교해 40% 가까이 하락한 수치다. 여기에 최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 실패로 급락세를 보였던 유가는 추가 하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정유업계는 이 같은 유가 하락에 가장 큰 직격탄을 맞았다. 유가 하락이 끝없이 이어지자 이에 따른 재고평가 손실 여파도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고평가 손실은 정유사들이 보유한 원유와 석유제품 등의 재고자산 평가에 취득가격보다 시장가격이 더 낮아지면서 자산가치가 줄어드는 손실을 의미한다.
이처럼 재고평가 손실 부담은 정유사들의 경영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난 3분기 정유사들은 매출 비중의 70%가량을 차지하는 정유 부문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실제 1위 SK이노베이션은 3분기 재고평가 손실만 1900억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GS칼텍스도 정제마진 악화로 정유 부문에서만 1640억원의 적자를 기록, 4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냈다. 에쓰오일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정유사들은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국제 유가의 추가 하락 가능성을 낮게 내다봤다. 지난달 초 만난 정유사 관계자는 "수십 년간 지켜본 국제 유가의 흐름상 배럴당 80달러대 이하로 추가 하락은 어려울 것"이라며 "중동을 중심으로 감산하면서 서서히 회복 기조를 나타낼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오랜기간 정유업계에 몸담았던 그의 예상은 단 몇 주 만에 빗나갔다. 일주일 만에 국제유가가 70달러대로 떨어지더니 다시 한 달 만에 무려 60달러대까지 추락한 것이다.
당황한 정유사들은 일제히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SK이노베이션은 유가 하락 등 대외 변수의 급격한 변동 상황에 대비해 싱가포르, 두바이, 런던 등 해외지사를 활용해 실시간 모니터링 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또 지난 7월 임원 연봉 삭감에 이어 최근 직원들의 연봉 삭감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SK이노베이션은 임원은 매월 급여의 15%, 직원은 10%를 적립해놓는 제도를 운용 중인데 올해 결산 실적이 안 좋을 경우 이를 받을 수 없게 된다.
GS칼텍스도 원유 도입선의 최적화를 위해 시장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도착월 가격 기준의 원유 도입 비율을 늘리고 동남아 등 근거리 원유의 도입비중을 높일 계획이다. 유가 하락기 리스크를 줄이려면 원유를 선적월이 아닌 도착월 기준 가격으로 구매하는 것이 유리한 탓이다.
또 다른 정유사 관계자는 "유가 추세 변동에 따라 장기 및 현물 원유 구매 비율을 유연하게 운영하고 있다"며 "현 상황이 정유사에 악재인 점은 분명하지만, 유가 하락 장기화로 점차 소비가 증가하고 있는 점은 향후 정제마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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