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치열하게 연기할 때 가장 행복한, 배우 김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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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3-0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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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나무엑터스]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 신하경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전 남편에게 무덤덤하게 말한다. “당신이랑 헤어지고, 예린이 딱 한 번 혼냈어. 예린이 프로야구 팬이야. 1등 팀 좋아해, 지는 것 싫다고. 그래서 혼냈어. 당신처럼 살까 봐”.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 아등바등 진흙탕에서 살았던 검사는 전 아내에게 되묻는다. “져야 되니? 잘난 놈들 부모 덕에 집안, 재산 믿고 달려가는데 보고만 있을까? 하경아, 세상, 원래 그래”.

‘맞아. 세상 원래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신하경은 말한다. “세상 원래 그래,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 공평한 세상? 앞으로도 없을 거야, 그런 세상. 문제는 나야, 그런 세상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지난달 종영한 SBS 드라마 ‘펀치’는 서로의 약점을 움켜쥐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사건을 만들고 관리하는, 진실조차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하는 권력층의 욕망을 정조준했다. ‘펀치’에는 덜 나쁜 놈과 더 나쁜 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최악과 차악을 고민하는 인물로 가득했다. 이 세상에 선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그들 사이에서 신하경은 유일한 ‘선’이었다.

최근 서울 논현동 카페에서 만난 김아중은 “시청자와 좁혀졌다가 멀어졌다 하는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각박한 세상에서 절대 선을 내세우는 게 사실 보는 사람이 쉽게 공감할 만한 캐릭터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또 ‘내 딸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서다’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시고요. 말씀하신 장면은 대본 두 장에 달하는 분량이었는데 하경이에게 완전히 공감돼 대사를 단번에 외웠죠.”

[사진 제공=나무엑터스]

‘펀치’는 작가의 정치권력을 그린 ‘추적자’, 자본의 권력을 그린 ‘황금의 제국’으로 ‘드라마 판에 몇 안 남은 문학의 아들’이라 불리는 박경수 작가의 ‘권력 3부작’ 완결편이다. 살아있는 캐릭터와 구미를 당기는 에피소드를 켜켜이 쌓아 올려 단단한 작품이 완성됐다.

“1회 시나리오만 보고 출연을 결정했어요. 회당 시놉시스조차 없는 상태에서 그런 결정을 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1회 대본만으로도 충분히 전체 완성도를 짐작할 수 있었어요. 게다가 남녀 멜로 이상으로 끈끈한 (조재현 김래원의) 브로맨스나, 이념과 신념으로 치열하게 대립하는 남녀(조재현 최명길)의 모습은 외국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설정이 아니거든요.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신하경에게 무엇하나 쉬운 것은 없었다. 여전히 사랑하는, 시한부 인생의 전 남편을 “당신 같은 사람 때문에 세상이 이 지경이 됐다”며 몰아세워야 했고, 세상을 바꾸려 노력했지만 적은 한 걸음을 떼는 것도 녹록지 않았다. 절대 선이라 믿으며 따랐던 선배 검사(최명길)가 실은 제 욕망에 눈이 먼 악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좌절했다.

“내가 사랑했고 내 딸의 아빠이고 치열하게 살았지만 결국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생을 마감할 사람, 안아 주고 보듬어 주고 싶은 사람을 애써 쳐내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연민을 느끼는 사람에게 독한 말을 내뱉기 위해 매일 마음을 다잡았어요. 신념을 내세우지만 정작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때의 절망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고민 많이 했고요.”

쉽지 작업이었음이 분명할 텐데 “참 행복했다”고 말했다. “쉽지 않았죠. 사실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가끔은 멘붕이 올 정도였어요. 하지만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렇게 완벽한 대본을 받아서 ‘이렇게 좋은 대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두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죠. ‘50점짜리 캐릭터를 어떻게 80점짜리로 만들까?’ 고민할 때도 있지만 ‘펀치’는 ‘100점짜리 대본을 내가 80점짜리로 만들면 어쩌지’ 우려하며 치열하게 연기할 수 있었어요. 흔치 않은 행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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