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서울에 두고 온 세살배기 아들과 통화 했을 때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4개국 순방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참가하고 있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그룹 회장)은 과거 자신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근무했던 추억을 이렇게 전했다.
박 회장은 지난 1982년 두산음료에 입사한 뒤 그해 두산그룹의 건설 계열사였던 동산토건(현 두산건설) 사우디 지사에서 1년 넘게 근무한 적이 있다.
4일 대한상의에 따르면, 박 회장은 현지 출장을 간 대한상의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33년전 체험했던 사우디 생활을 소회했다.
그는 “현지 근무 당시 픽업트럭 몰고 리야드 시내를 다니면 거기가 거기일 정도로 뻔한 정도였는데, 이번에 와서 창문을 통해 바라보니 어마어마하게 도시가 팽창했고 건물들의 스카이라인이 완전히 변했다”며 “당시 리야드 시내에서 전자제품을 많이 팔던 거리를 우리 근로자들이 ‘청계천 세운상가’라고 이름을 붙여 기억하곤 했는데 이제는 어디가 어디인지 찾을 수조차 없이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박 회장이 근무했던 시기는 동산토건, 현대건설, 대우건설을 비롯해 국내 건설사들이 대거 중동으로 진출해 각종 건설·토목공사를 진행했으며, 다수의 국내 기술인력이 현지로 넘어가 현지인들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열사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특히, 중동지역 국가 곳곳에 영업을 하고 있는 한정식 식당 중에는 당시 우리 근로자들에게 따뜻한 밥과 김치를 요리해 주기 위해 함께 먼 이국 땅으로 간 주부들이 현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영업을 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이들이 벌어들인 외화는 한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됐으며,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국가들도 한국 건설사들이 완공한 건물, 도로, 교량, 항만, 공장으로 근대화를 이뤄냈다.
두산그룹으로서도 중동은 잊지 못할 장소다. 동산토건은 무역과 음료, 주류 등 소비재에 주력해 왔던 두산그룹이 “언젠가는 OB그룹(현 두산 그룹)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기간산업을 담당해야 한다”는 박두병 선대회장의 의지에 따라 1960년 7월 1일 설립한 기업이다. 국내에서 토목·건축업·전기공사·설비공사로 영역을 확장하며 외연을 넓힌 뒤 중동에 진출해서 많은 성과를 거뒀다. 중공업 체제로 전환하고자 한 두산그룹의 변화는 동산토건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박 회장은 “오늘의 사우디를 건설하는데 대한민국 기업인과 근로자의 땀을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렵고 대한민국 경제가 오늘에 오기까지 사우디의 도움과 사우디에서의 우리 활동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들이 이뤄낸 성과를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지구 반대편 중동 땅에서 홀로 지내며 가장 보고 싶었던 대상은 역시 자식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우디에서 일할 때 서울에 두고 온 아들이 세살이었는데 서울에 힘들게 국제전화를 하면 멀리 들리는 소리로 ‘아빠’하는 부름에 눈물이 글썽이곤 했다. 나뿐 아니라 현장 사무실에 와서 서울에 전화를 하는 직원들 상당수가 그랬다”고 전했다. 당시 통화한 아들이 박서원 오리콤 최고광고제작책임자(CCO)다.
박 회장은 “그래도 그때는 달러 버는 재미에 다들 그런 삶이 당연하고 자랑스러웠다. 국가간 동반성장이라는 말의 산 증거가 사우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박 회장은 사우디 현지 근무 이후 1990년까지 사우디에 자주 갔고, 1990년대에는 뜸하다가 두산중공업을 인수한 후인 2003년부터 1~2년에 한 번꼴로는 방문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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