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월드컵 본선진출,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 이는 '축구광'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공개한 '세 가지 소원'이다.
대국의 수장이 외교무대에서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은 이 같은 발언은 중국인의 축구 사랑을 대변한다. 아울러 축구에 대한 애착과 자존심은 어느 누구 못지 않지만 월드컵 시즌마다 '남의 집 잔치판' 바라보듯 할 수 밖에 없었던 중국 축구의 현실을 반영한다. 세계 무대에 위협적 존재로 부상하고 있는 주요 2개국(G2)인 것과는 대조적이다.
중국 공산주의 혁명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뤄내지 못한 주추멍(足球夢∙축구의 꿈) 실현을 위해 시진핑(習近平) 지도부는 3억 명의 추미(球迷·축구광)를 앞세운 '축구공정'에 시동을 걸었다.
여기에는 축구 굴기(崛起∙우뚝 일어섬)라는 목적 외에, 스포츠 산업이라는 신(新)성장 동력을 발판으로 경제부국으로 부상하려는 중궈멍(中國夢)이 투영돼 있다.
◆ '축구 경제'…스포츠산업 '황금기' 견인
올해 들어 중국 정부는 스포츠 산업,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축구 산업 지원에 속도를 내고 있다. 축구 산업을 주축으로 한 스포츠 산업의 발전은 곧 중국 경제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구상에서다.
중국 정부는 '축구경제학(사커노믹스)'을 골자로 한 스포츠 산업 육성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지난해 10월 중국 정부는 '스포츠 산업 육성을 통한 스포츠 소비촉진 방안'을 발표하고 중국 경제 발전에서 스포츠 산업의 비중을 큰 폭으로 확대한다는 내용의 방침을 내놨다.
최근에는 축구 산업 발전을 위해 축구클럽 관리제도, 축구산업 투자, 축구장 증설, 각계자본 투자유치 등 전반적인 축구산업 개혁에 관한 내용을 담은 '중국축구개혁 총괄방안' 심의를 통과시켰다.
구체적으로 2017년까지 전국적으로 2만여 개의 초∙중학교를 '축구특색학교'로 선정해 세계적인 축구 인재 양성에 나선다. 200여 개의 대학 축구팀 창단하고 30여 개의 학교 축구 시범 구·현(區·縣)을 선정해 '학교 축구'도 육성한다. 또 '전국 청소년 캠퍼스 축구공작 영도소조'를 발족시켜, 축구를 국민 스포츠로 육성할 계획이다.
신중국 건국 이래 중국 당국이 이 같은 대규모 방안을 제시한 것은 처음이다. 축구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중국 정부의 강인한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지난해부터 성장 본궤도에 오른 중국 스포츠 산업이 연간 24.59%의 성장률을 기록해 2020년이 되면 1조6700억 위안, 2025년이면 5조 위안(약 884조1000억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전체 스포츠 산업이 5조 위안 규모로 성장할 경우, 중국 축구 산업 규모는 2조 위안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 중국 증시 '총아'로 부상한 '스포츠 테마주'
스포츠 산업은 티켓, 경기 중계, 스포츠 용품에서부터 게임 및 데이터 분석 프로그램 개발, 복권, 관광, 스폰서 유치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익 창출원을 보유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든든한 지원까지 더해지면서 스포츠 산업은 중국 증시의 '스타주'로 주목받고 있다.
중티찬예(中體產業 600158.SH)는 국무원 직속 기관인 국가체육총국 산하 유일한 상장 국영기업이다. 스포츠와 관련한 부동산 개발 및 운영, 스포츠 복권, 스포츠 경기 및 이벤트 관리 등 사업에 관여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힘입어 최근 1~2개의 중대 스포츠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 수혜가 예상된다.
LED 전광판 생산업체 레이만광전(雷曼光電 300162.SH)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도 뜨겁다. 레이만광전의 핵심 사업은 스포츠 LED 설비 개발로, 지난 2011년 중국 축구 슈퍼리그(CSL)와 LED 설비 공식스폰서 계약을 체결하고 오는 2016년 12월까지 독자적으로 연구개발한 신형 LED 전광판을 납품하기로 했다.
최근에는 축구 관련 모바일 앱(APP)까지 출시하며 스포츠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2번째 축구선수라는 의미의 '제12인'(第12人)이라는 이 앱 서비스는 오는 3월 개막하는 '2015 중국 축구 슈퍼리그' 시즌에 맞춰 개시될 예정이다.
스포츠용품 개발 업체도 빼놓을 수 없는 인기 스포츠 테마주다. 중국 스포츠 의류 및 신발 리딩 브랜드 업체 구이런나오(貴人鳥 603555.SH)와 15년 역사의 아웃도어 용품업체 탄루저(探路者 300005.SZ) 등이 대표적이다.
구이런나오는 최근 스포츠 마케팅 업체인 후푸(虎撲) 스포츠문화방송유한공사와 제휴를 맺고 20억 위안 규모의 '스포츠산업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온라인을 통한 스포츠 사업도 확대할 예정이다.
스포츠 복권 사업은 최근 상장사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스포츠 사업 분야로 꼽힌다.
훙보구펀(鴻博股份 002229.SZ)과 안니구펀(安妮股份 002235.SZ)을 비롯해 가우훙구펀(高鴻股份 000851.SZ), 다즈후이(大智慧 601519.SH), 진야커지(金亞科技 300028.SZ), 순왕커지(順網科技 300113.SZ), 인민망(人民網 603000.SH) 등 상장사가 이미 발을 들였다.
이밖에 저바오촨메이(浙報傳媒 600633.SH), 러스왕(樂視網 300104.SZ) 등 스포츠 경기 온라인 및 생방송 중계 사업에 진출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 '축구광' 시진핑 측면지원 나선 기업들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고 있는 스포츠 육성정책에 부응하려는 듯 최근 중국을 대표하는 각계 기업들의 스포츠 시장 진출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중국 대표 부동산 개발업체 완다(萬達) 그룹은 지난달 21일 4500만 유로(약 548억5100만원)를 들여 스페인 프로축구 아틀렌티코 마드리드의 지분 20%를 사들였다.
이어 이달 초에는 월드컵축구 중계권 독점판매업체인 '인프런트 스포츠 앤드 미디어(이하 인프런트) AG'를 11억9000만 달러(약 989억9100만원)에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왕젠린(王健林) 완다그룹 회장은 "인프런트는 중국이 주요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도록 하는 데 최고의 위치에 있다"면서 "이번 인수로 중국에서 스포츠 행사를 강화하고, 글로벌 스포츠 무대에서 완다 그룹의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또한 지난해 6월 중국 명문 축구구단인 '광저우 헝다(恒大∙영문명 광저우 에버그란데)' 지분 50%를 1억9200만 달러에 인수하며 스포츠시장에 발을 들였다.
당시 마윈(馬雲) 회장은 '로스엔젤레스 클리퍼스'를 인수한 스티브 발머 마이크로소프트(MS) 전 최고경영자(CEO), 프로 농구팀 '댈러스 메버릭'을 인수한 마크 쿠반, 알리바바의 대주주이자 일본 프로야구팀을 인수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에 비견되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특히 가장 화제를 모았던 것은 마 회장이 '광저우 헝다'를 인수하는 데 걸린 시간이 단 15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투자기회 포착에 남다른 안목을 갖고 있는 마윈 회장에게 있어 스포츠 산업은 그만큼 매력적인 투자처였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 무술 수련 본산이자 9개의 무술학교를 거느린 '거대 기업' 소림사(少林寺)까지 축구굴기에 나섰다. 허난성 쑹산(嵩山) 사찰 부근에 330만㎡ 규모 축구 단지를 조성하고, 무술 훈련생 1000여명 중 40명을 엄선해 훈련시켜 '중국판 메시'를 대거 배출한다는 계획이다. 영화 '소림축구' 속 모습이 미래 중국 축구의 데자뷰가 될 수 있을 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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