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상희 기자 = 그 동안 무성한 소문을 키워온 아시아 최고 부호 리카싱(李嘉誠) 청쿵그룹 회장의 '홍콩 엑소더스(탈출)'가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중국 매일경제신문(每日經濟新聞)은 리 회장 산하 청쿵그룹이 자사가 보유하고 있던 홍콩 장쥔아오(將軍澳)의 주상복합 아파트 즈란톈(致藍天·영문명 헤메라)를 시세보다 20%나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고 8일 보도했다.
이는 주변 중고 아파트 시세와 맞먹는 수준으로 첫날 내놓은 740채 규모의 매물은 불과 9시간 만에 모두 판매됐다. 이를 통해 청쿵그룹은 55억 홍콩달러(약 7750억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단일 매각액 기준으로 역대 최고 규모다.
청쿵그룹은 올해 안으로 800~1000채의 매물을 판매할 계획이었으나 단 이틀만에 예상규모의 14배에 달하는 5100명의 매입 신청표가 몰렸다.
이번 매물은 다주택 구매 시 18%와 19.5%의 할인 혜택이 주어져 방 3개가 600만 홍콩달러, 4개는 800만 홍콩달러 정도에 판매됐다.
리 회장은 몇 년전부터 중국과 홍콩에 보유하고 있던 부동산 처분에 나서고 있다.
지난 2013년 슈퍼마켓 체인 '바이자'에 이어 상하이 오리엔탈파이낸셜센터, 베이징 잉커센터를 잇따라 처분했다. 리카싱의 차남 리처드 리(李澤楷·리쩌카이)가 보유하고 있던 홍콩텔레콤 주식 1억1800만주도 모두 팔았다. 2013년 이후 리 회장이 매각한 중국·홍콩 부동산만 130억 달러에 이른다.
이같은 중국 부동산 탈출 움직임은 올해 초 사업 개편안 발표와 함께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1월 리 회장은 청쿵 그룹 산하 부동산 투자회사 청쿵 실업과 항만·통신·소매 사업을 관할하는 허치슨 왐포아를 합병해 부동산 사업(CK 홀딩스)과 비부동산 사업(CKH 홀딩스) 지주회사로 재편하는 내용의 대대적 사업 개편안을 발표했다. 또 청쿵그룹을 홍콩 증시에서 폐지하고 CKH 홀딩스를 상장키로 했다. 이 신규법인은 조세회피처인 영국령 케이맨제도에 등록할 계획이다.
리 회장은 중화권 부동산에서 발을 빼는 대신 유럽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2년간 리 회장이 유럽에 300억 달러를 투자했다.
이같은 리 회장의 '셀(sell) 차이나' 움직임에 대해 시장에서는 여러 가지 관측을 제기하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률과 부동산 시장 성장 둔화, 그룹 재편을 통한 새로운 사업모델 구상을 비롯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껄끄러운 관계도 그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일국양제(一國兩制·하나의 중국, 두 개의 제도)를 강조하는 시진핑 지도부의 고집스런 원칙주의 하에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가 중국 밑으로 휩쓸려가는 모습이 철저한 홍콩 자본가 리 회장의 불안감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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