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왕라오지(王老吉)’와 ‘자둬바오(加多寶)’는 중국의 국민 건강음료 브랜드다. 둘 다 ‘홍색 캔’ 포장에 노란색 글씨로 브랜드 이름이 적혀있다. 이름만 서로 다를 뿐 언뜻 보면 같은 회사 음료 자매품 같다.
이처럼 ‘홍색 캔’ 원조를 둘러싼 왕라오지와 자둬바오간의 3년 간에 걸쳐 지리한 법정 싸움도 조만간 매듭을 지을 것으로 보인다.
'홍색 캔' 전쟁은 2012년 7월 왕라오지와 자둬바오가 홍색 캔 포장의 소유권을 주장, 쌍방 간 소송을 제기하며 시작됐다. 최고인민법원은 지난 16일 홍색 캔 포장 소유권을 둘러싼 2심 재판을 진행했다. 조만간 재판 판결이 나오면 홍색 캔의 원조도 가려질 전망이다.
지난 해 12월 발표된 1심 재판 결과는 왕라오지의 승리였다. 당시 재판부는 홍색 캔의 소유권이 왕라오지에 있다며 자둬바오가 유사 포장으로 왕라오지의 소유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자둬바오가 즉각 관련 상품의 생산·판매·광고를 중단하고, 왕라오지 브랜드를 보유한 광저우의약그룹에 경제적 손실액 1억5000만 위안(약 270억원) 등 배상금을 지불하라고 했다. 이에 불복한 자둬바오는 항소를 제기했다.
왕라오지와 자둬바오는 숙명의 라이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왕라오지와 자둬바오는 같은 뿌리에서 시작됐다,
왕라오지가 최초로 탄생한 것은 1837년 청나라 때다. 왕쩌방(王澤邦)이라는 사람이 광저우에서 냉차(凉茶)를 만들어 판 게 효시다. 왕라오지는 당시 왕쩌방이 광저우에 세운 냉차가게 이름이었다. 이후 왕라오지는 커다란 인기를 얻으며 베이징·상하이를 비롯해 중국 대륙은 물론 홍콩·마카오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1949년 신중국 설립 후 왕라오지는 두 개로 분열됐다. 광저우의 왕라오지가 광저우의약그룹이라는 국유기업 소유로 전환되면서 홍콩의 왕라오지를 왕쩌방의 후손들이 운영하게 된 것. 그때부터 중국 대륙과 홍콩에는 ‘두 개’의 왕라오지가 존재했다. 중국 대륙의 왕라오지는 예전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으면서 판매량은 바닥을 쳤다.
왕라오지를 오늘날 연간 판매량 200억개에 달하는 중국 국민음료로 만든 일등공신은 자둬바오다. 자둬바오는 홍콩의 천훙다오(陳鴻道)라는 사업가가 세운 회사다. 그는 홍콩의 왕라오지로부터 전통 제조 비법을 전수받은 후 1997년 광저우의약그룹과 왕라오지 상표권을 15년간 중국 대륙에서 독점 운영할 수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 자둬바오가 만들어 판 홍색캔의 왕라오지 음료는 중국인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왕라오지 브랜드 가치는 2010년 1080억 위안(약 19조원)으로 평가받았다. 왕라오지의 인기에 상표권이 탐난 광저우의약그룹은 자둬바오와 상표권 연장 계약을 거절했다. 이에 지난 2012년 ‘왕라오지’ 상표권을 둘러싸고 양사는 지리한 법정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홍색 캔’ 전쟁 역시 상표권 전쟁의 연속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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