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100 - 분양광고

"제2연평해전은 '승리의 해전'"…13년만에 재평가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5-06-29 18:43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그동안 국가로부터 냉대를 받았던 제2연평해전이 13년만에 재평가받고 있다. [사진= YTN 캡쳐]

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 그동안 국가로부터 냉대를 받았던 제2연평해전이 13년만에 재평가받고 있다.  

지난 2002년 6월 한창 월드컵 열기로 뜨거웠던 한반도의 서해상에서 발생한 제2연평해전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가치정립 부분에서 소외되면서 유가족 보상 문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측면에서 '홀대'를 받아왔다.

지난 13년을 보상하듯 13년이 흐른 29일 제 2연평해전은 '승리의 해전'으로 다시 이름붙여졌다.

한민구 국방 장관은 이날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열린 제2연평해전 13주년 기념식 추모사에서 "제2연평해전은 우리 장병이 북한의 도발을 온몸으로 막아낸 승리의 해전"이라고 밝혔다.

이날 추모행사에는 현직 국방부 장관이 처음으로 추모사를 한 것은 물론 기념식 자리에서 승전으로 규정한 것도 처음이다. 이날 기념식에는 한 장관을 비롯해 정호섭 해군참모총장, 여야 대표, 전사자 유족, 참수리 357정 승조원 등 700여 명이 참석했다.

제 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참수리 357호정이 거해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에게 기습 공격을 받아 윤형하 소령 등 우리 군 6명이 전사했고 19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이다.

하지만 교전 이틀 뒤 치러진 희생 장병 영결식에는 남북관계를 의식해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와 국방장관, 합참의장마저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연평해전이 발발했음에도 다음 날 한일 월드컵 폐막 경기 관람 차 일본으로 갔고, 희생자 추모행사 역시 정부가 아닌 해군 차원에서 축소해 치르도록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또 당시 '교전'으로 기록됐던 이 해전은 지난 2008년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됐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많다.

우선 이날 한 국방장관이 '승리의 해전'이라고 천명한 것처럼 당시 우리 해군의 신속한 대응으로 북한 해군함정을 응징, 북한군은 사상자 30여명이 발생하고 경비정 1척이 대파됐다.

하지만 우리군은 이 해전을 '패배한 교전'으로 오랫동안 평가해 와 역사적 가치정립 등 여러 면에서의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의 국방정책은 이 부분을 부각시키기 꺼려한 점이 분명히 있었다"며 "13년이란 시간동안 정부나 국민 모두가 유가족들의 아픔을 외면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국가보훈처가 '서해교전'으로 명명했던 것을 2008년이 돼서야 '제2연평해전'으로 정리한 것"이라며 "오늘 국방장관이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사실상 국방부 차원의 행사가 아닌 좀 더 행사 규모를 키웠어야 했던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또 이 해전으로 사망한 6명의 용사가 '순직'이 아닌 '공무 중 사망'인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에 발발했지만 관련 법령은 2004년에 개정돼 소급적용이 안된다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안규백 의원이 군인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출해 놓은 상태다.

이날 한 국방장관이 '제2연평해전'을 '승전'이라고 공식 천명함으로써 ‘6용사’에 대한 예우가 순직자에서 전사자로 변경되는 작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