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열 칼럼] 다산과 엘란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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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7-22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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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리스트가 정국을 흔들고 방위산업 비리로 별들이 떨어질 때마다 나는 다산에게 죄송하다. ‘목민심서’의 가르침을 후배 공직자들이 아직도 몸에 익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송구스럽다. 지난 4월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넘어가는 길에서 동백꽃 군락지를 만나는 호사를 누렸다. 동백꽃은 나무 아래에서 더 아름답다. 동백꽃은 핀 채로 툭툭 떨어진다. 빨간 융단처럼 보이는 동백꽃 무덤을 바라보노라면 명치끝이 시큰해 온다.

내가 서 있는 그 길에 200년전의 다산도 서 있었다. 다산은 그 길을 오가면서 고된 귀양살이의 고독과 분노를 삭였다. 18년이라는 오랜 성찰의 시간속에서 ‘경세유표’와 ‘목민심서’라는 대작이 완성됐다. 목민심서를 관통하는 그의 철학은 ‘애민’(愛民)과 ‘공렴’(公廉)이었다. 공렴은 공정하고 청렴한 것이다. 다산은 목민관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기 위해 필수적인 여섯 항목을 목민심서의 ‘율기(律己) 6조’에 정리해 뒀고 그 두 번째가 청심(淸心)이다. 청렴한 목민관이야말로 아전과 백성의 존경을 받으며 오래 공직에 머무를 수 있으니 결국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되며, 진정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다산이 28세에 문과에 급제했을 때 지었다는 5언 율시에도 그의 ‘공렴’ 정신이 드러나 있다. ‘둔졸난충사 공렴원효성’(鈍拙難充使 公廉願效誠, 둔하고 부족해 충분히 임무를 수행하기 어렵겠지만, 공정함과 청렴함으로 정성을 다하겠다) 열 글자를 오늘날의 공직자들도 가슴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다산의 ‘공렴’ 정신을 실천해 총리직에 23년 머물렀던 정치인이 있다. 이 얘기를 꺼내면 누구나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얘기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게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4만 달러를 넘고, 요람에서 무덤까지 복지가 잘 갖춰져 있으며, 정치는 투명하고 민주주의가 잘 발달해 있는 스웨덴의 얘기다.

타게 엘란데르(Tage Erlander)는 1946년 45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된 이후, 1969년 물러날 때까지 무려 23년간 재임했다. 민주국가에서 23년간 총리로 재임하는 게 가능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의원내각제에서는 다수당이 집권당이 되고 총리를 배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선거에서 계속 승리한다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스웨덴에서는 실제로 가능했다. 엘란데르는 사민당 소속으로 11번의 선거에서 11번 승리함으로써 23년 동안 총리의 자리에 계속 머물 수 있었다.

엘란데르 총리가 23년간 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스웨덴 국민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또 많은 성과를 올렸고, 정치를 잘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 역시 다산의 ‘애민’ 정신에 기반해 있었기 때문이다. 엘란데르가 45세의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됐을 때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으면서 반문했다고 한다. “너는 정치인으로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희생할 각오가 돼 있는가?”

총리직 23년을 마친 엘란데르에게는 주택 한채 없었다. 임대주택에 들어가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를 사랑했던 국민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난처해진 사민당에서는 부랴부랴 스톡홀름 외곽의 연수원 부지에 엘란데르 부부를 위한 주택을 지었다. 그의 사후 이 별장은 일반인에게 공개됐고, 미래의 정치 지도자를 꿈꾸는 사람들이 반드시 방문하는 성지가 됐다.

엘란데르 총리의 또 하나의 업적은 정상에 있을 때 스스로 물러났다는 점이다. 집권 당시 이미 ‘국민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얻었던 엘란데르는 1968년 선거에서 사민당의 단독 과반이라는 커다란 승리를 이끌어 냈다. 그 시점에서 그는 은퇴를 예고했다. 1년 후 젊은 정치인에게 총리직을 넘기고 물러나겠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해버린 것이다. 실제 그는 1969년 ‘올로프 팔메’라는 당시 42세의 젊은 정치인에게 총리직을 넘겨주고, 스스로 정계를 떠났다. 한창 아름다운 동백꽃이 절정의 상태에서 땅위로 떨어지는 것처럼 엘란데르는 총리에서 평민이 됐다. 다산의 ‘공렴’ 정신과 엘란데르의 성공사례를 2015년 대한민국의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다시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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