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소비자는 없고 리셀러만 있는 'H&M-발망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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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1-0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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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H&M]


아주경제 안선영 기자 = "아무리 한정판이라고는 하지만 리필(진열대에 상품을 채워넣는 것)도 해주지 않고 이게 뭡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닷새나 노숙하진 않았죠."

5일 오전 8시 서울 명동은 이른 시간임에도 SPA 브랜드 H&M과 명품 브랜드 발망의 컬래버레이션 제품을 구입하기 위한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대기줄은 판매 당일 새벽 350여명으로 늘어났다. 매장 오픈 직전에는 전쟁터에서 느낄 수 있는 긴장감마저 감돌았다.

이들에게 이정도 노숙은 '고생'도 아니었다. 수백만원대에서 최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명품브랜드 발망을 저렴한 가격대에 구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티셔츠 4만 9000원, 블라우스 11만 9000원, 재킷 13만원, 코트는 55만원 정도로 실제 가격의 1/12 수준이다.

 

[사진제공=H&M]


하지만 H&M·발망 컬렉션은 명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입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당초 취지에서 벗어나 보였다. 이날 매장에 고객은 없고, 리셀러(re-seller)만 있었다.

줄을 선 사람들은 선착순으로 총 14가지의 팔찌를 받았다. 팔찌 색에 따라 30명이 한 그룹을 이뤄 10분씩 쇼핑을 할 수 있다. 이미 공개된 사진을 통해 컬렉션을 살펴본 이들에게 10분은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한 그룹이 10분간 쇼핑한 뒤에는 5분간 정비시간이 있다. 이 때 빠진 상품들을 채워놓고 매장을 정리한다.

문제는 제품 판매가 시작한 뒤 바로 발생했다. 1그룹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할당된 8시 10분까지의 쇼핑이 8시 40분까지 지연됐기 때문이다. 부족한 수량 탓에 고객들 사이에는 물건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일어났고, 매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상황이 진정되지 않으니 리필도 이뤄지지 않았다. 일부는 욕설과 작은 몸다툼까지 벌어졌다.

1그룹에 있었던 사람들은 대여섯개, 많게는 10개가 넘는 쇼핑백을 힘들게 들고 나왔다. 며칠의 노숙까지 감행한 이들은 대부분 일반 소비자가 아니라 웃돈을 얹어 물건을 되파는 리셀러라는 주장이 나왔다.

관계자에 따르면 앞서 진행된 컬래버레이션 제품 판매 당시에도 본 '낯익은' 사람들이거나 먼저 H&M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까지 있었다.

 

[사진제공=H&M]


H&M은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해 동일 디자인에 대해 1개만 구입할 수 있도록 구매 제한을 규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일부 리셀러들은 팀까지 결성해 종류별로 물건을 구입하는 역할 분담을 했다. 이들은 닥치는 대로 제품을 쓸어담아 수백만원씩 결제했지만, 업체에서 이런 행위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이날 판매된 제품 중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해 기존 가격보다 4~5배 비싼 가격에 재판매된다. 발망의 경우 재킷과 바지의 인기가 많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매진도 빨리 이뤄지고 인터넷에서 그만큼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

정해진 H&M 마케팅실장은 "매년 명품업체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지만 올해 특히 관심이 집중된 것 같다"며 "내년에는 안전을 위해 그룹당 인원수를 줄이는 방식 등 자구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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