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륜마저 외면케 하는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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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12-28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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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사는 부모는 정성껏 모시지만 가난한 부모에게는 생존비용 조차 부담하지 않는 유전봉양(有錢奉養) 무전박대(無錢薄待) 현상이 만연한 세태가 됐다.

최근 대법원이 "부모를 '충실히 모시는 조건'으로 재산을 물려받은 자식이 약속을 어겼다면 이를 부모에게 돌려 줘야 한다"는 판단을 내리면서 잠자고 있는 효도법(일명 불효자 방지법)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재산을 둘러싼 다툼의 양상과 효도 각서 작성 여부에 따른 법률적 효과, 국회에 계류 중인 효도법의 진척 상황 등을 3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사진=대법원 제공]


① 천륜마저 외면케 하는 돈

A씨(76)는 2003년 12월 자신이 서울에 소유한 대지 350여㎡에 세워진 2층짜리 단독 주택을 아들에게 증여했다. 그러면서 "아들이 부모와 같이 살며 부양 의무를 충실히하며 불이행시 증여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취지의 각서를 썼다. 이외에도 A씨는 부동산과 주식 등을 처분해 아들 회사의 빚을 갚아 주었다.

하지만 아들은 다른 이들에게 아픈 모친의 간병을 맡기다가 종내는 요양시설에 갈 것을 권했다. 이에 A씨가 주택 등기 이전을 요구하자 "천년만년 살것도 아닌데…'라며 막말도 불사했다.

대법원은 지난 27일 A씨가 낸 소송에서 '부양의무를 다한 근거가 없으므로 부모에게 주택을 돌려주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A씨가 '각서'를 받아두지 않았다면 승소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B(74·여)씨는 1998년 숨진 남편에게서 2층 짜리 집 한 채를 받았다. 하지만 미국으로 이민 가 고생하며 사는 아들 문모(54)씨가 늘 눈에 밟혔다. B씨는 유일한 상속재산을 아들에게 넘겼다.

14년 뒤인 2012년 이씨는 뇌출혈로 쓰러져 수술을 받았지만 신체 마비가 왔다. 6개월간 병원비만 3000만원이 들었다. 아들에게 연락했지만 돌아온 것은 "돈이 없다"는 야멸찬 답변뿐이었다. 빈털터리였던 이씨는 장남을 상대로 부양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울가정법원은 2013년 말 "문씨는 과거 부양료로 이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고 장래 부양료로 매달 2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난 2010년 B씨는 해외 유학을 마친 뒤 기업의 간부가 된 아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아들 내외가 2005년부터 가족들과 연락을 끊은데다 간혹 찾아가는 어머니를 문전박대까지 하는 등 불손한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부모자식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급기야 B씨는 아들을 상태로 '유학·결혼·주택구입 비용 등 7억여원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이 사안은 아들의 사과를 받은 B씨가 소송을 취하하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부모 자식간의 재산 분쟁을 통해 민낯을 드러내는 '돈과 효도의 불편한 상관관계'가 씁쓰레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유교적 전통인 부모 공경 의식이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 단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상만은 아니다.

중국에서는 2012년 12월 중순 장쑤성 관윈현에 사는 90대 할머니가 자식에게 버림받고 2년간 돼지우리에서 지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 할머니는 슬하에 무려 5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있었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 이전부터 노인 문제를 둘러싼 여론이 심상치 않았던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같은 해 12월28일 노인인권권익보장법(일명 노인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2013년 7월부터 발효된 노인법은 자녀가 노인을 돌보고 노인을 소홀히 하거나 버리지 않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자식은 자주 방문하거나 안부를 전해야 하며 고용주는 직원의 고향 방문 때 유급휴가를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했다.

그러나 중국의 언론과 학계에서는 자식의 방문 빈도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아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노인법을 위반할 경우에 대한 제재조치도 없기 때문에 단지 자식에게 늙은 부모를 잊지 말 라고 상기시키는 데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2013년 현재 자식의 봉양을 못받는 60세 이상 중국 노인은 약 2억명으로 추산된다. 도시는 노인 절반, 농촌은 38%가 자식과 살지 않는 상황이다. 

1994년부터 부모부양법을 시행해 온 싱가포르도 예외는 아니다.

엄격한 부모를 부양하지 않는 자식을 최고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유교적 가족관계는 빠른 속도로 해체되고 있다. 싱가포르 시내 유명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 중 40%는 65세 이상 노인들이다. 노동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 사람은 아프지 말고 그냥 죽어야 한다"는 많은 현지인들의 푸념을 남의 나라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게 대한민국의 아픈 현주소다. 이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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