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초대석]유정곤 관세사 “과로로 별세한 기업 담당자 지금도 못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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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02-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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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곤 딜로이트 덕진관세법인 상무(관세사)가 고객과 상담을 하고 있다.[사진=딜로이트덕진관세법인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유정곤 딜로이트 덕진관세법인 상무(관세사)는 긴 경력만큼 다양한 소송을 치뤘다.

이긴 소송도 있고, 진 소송도 있었다. 수 많은 경험 가운데에서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늘 기억을 되새기며 마음을 다잡는 사례가 있다. 한국에 진출한 한 외국계 기업이다.

유럽 본사는 1989년 지분 100%를 투자해 한국에 법인을 설립해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의 플라스틱 강화재료인 유리장섬유를 생산했다. 생산설비에 적용되는 한 부분품을 본사로부터 수입해 사용했는데, 성능이 저하되자 이를 다시 본사로 수출한 뒤 재가공해 재생된 부분품을 재수입했다. 이 과정에서 업체는 관세법 조항에 따라 해외임가공감면을 받았다.

그런데 세관은 사후검증을 통해 재생된 부분품은 수리가공해 수입한 물품에 해당되지 않아, 관세 감면대상이 아니라며 감면된 관세 등 약 80억 원을 추징하겠다고 통보했다.

느닷없이 거액의 관세 추징에 회사 전체가 흔들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사건이 국내 관세 관련 소송 사상, 최장기 사례가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그가 사건을 맡아 2004년 11월 국세심판원에 심판 청구한 뒤, 1심 판결이 나온 2006년 8월까지 무려 3년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최종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3심 판결이 난 2007년 11월까지 더하면 4년을 소비했다. 결과는 모두 승소. 하지만 상처가 너무 컸다.

관세가 추징된 뒤 경영난에 휩싸인 회사는 소송 진행과정 중 구조조정을 실시해 많은 직원이 직장을 잃었다. 그럼에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본사는 한국 사업을 철수키로 하고 회사를 국내 업체에 매각했다.

무엇보다 유 관세가가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관세감면 및 수출입 통관 업무를 수행했던 회사 담당자였다. 유 관세사는 “담당자는 저와 함께 소송과 관련한 업무를 함께 진행했다. 추징에 따른 경영악화에 대한 책임, 구조조정에 따른 동료의 퇴사 등에 대한 부담을 진 그는 미안한 마음에 자기 자신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일에 매달렸다”고 말했다.

불복소송 과정에서 부정감면죄 조사(검찰 조사시 무혐의 결정을 받음)까지 받게 되자 담당직원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건강이 악화됐고, 결국 소송진행 중 퇴사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둔지 얼마 되지 않아 심장마비로 식물인간이 됐고, 얼마 후 사망했다.

회사에 대한 추징과 부정감면죄 사항은 모두 승소하고, 무혐의 결정이 났다. 그러나 △담당자의 사망 △회사 구조조정에 따른 많은 직원의 퇴직 △한국 회사로의 흡수 합병 △본사의 한국 투자 철회 등이라는 결말을 낳았다.

유 관세사는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노력을 한 업무로 모두 좋은 결정과 결과를 이끌어냈음에도, 가장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사건으로 기억한다”며 “당시 돌아가신 담당자께서 정신적으로 힘들고 병가 등을 내면서 육체적으로도 아파했을때 좀더 인간적인 마음과 관심을 갖지 못했는지 지금도 늘 후회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며 컨설턴트로서 쟁점 업무에 대한 노력도 중요하지만, 업무에 관련된 부서 및 사람에 대한 입장과 마음도 관심있게 바라보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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