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1994년 1월 선경그룹(현 SK그룹) 회장실. 최종현 회장이 그룹 재무담당 임원을 급히 찾았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공개입찰과 관련해 확인할 것이 있어서였다. 1년반 전인 1992년 8월, 최 회장은 어렵게 따낸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하는 대신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정보통신 사업에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그런데 선경그룹의 인수소식이 나오자 당초 1주당 5만 원대였던 한국이동통신 주가가 60일 이상 상종가를 치면서 33만5000원이라는 믿기지 않는 가격으로 뛰어올랐다, 그때 일일가격 상승제한선이 8000원이었는데 선경의 인수비용은 하루에 정확하게 100억원씩 올라가고 있었다. 회사 가치는 1000억원대였는데, 4200억원까지 치솟은 것이다. 인수를 검토하던 경영위원회 위원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최 회장과 재무임원과의 대화가 시작됐다.
“얼마나 비싸게 주고 사는거냐?”
“2000억원은 더 주고 사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정보통신사업이 어떨 것 같아?”
“빨리 발전할 것 같습니다.”
“그럼 5년뒤에 산다면 얼마나 더 줘야 하지?”
“5000억원은 더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2000억원을 더 주고 사는 것은 나중 일을 생각하면 싸게 사는 거야. 우리는 충분히 준비했으니 10년 이내에 1조~2조원의 이익은 낼 수 있어. 무조건 사!”
결국 선경그룹은 주당 33만5000원씩 127만5000주를 4217억원에 샀다. 비싸게 사는 만큼 반드시 정보통신 사업에서 성공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그룹이 망할 수 있다는 일종의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결단은 엄중했고 실행은 확실했다. 한국이동통신 인수는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으로 판명됐을뿐 아니라, 인수 7년후부터 당기순이익이 1조원을 상회했다.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회’다. 우리는 기업을 산 것이 아니라 통신사업 진출의 기회를 산 것이다. 기회를 돈만으로 따질 수는 없다.” 10년 앞을 내다보는 최 회장의 사업관 덕분에 SK그룹은 새로운 성장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최 회장은 1973년 SK그룹 창업주이자 맏형인 담연(湛然) 최종건 회장의 뒤를 이어 2대 회장으로 취임해 석유파동으로 인한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그룹 토대를 탄탄하게 굳혔다. ‘무리하지 않으면서 남이 개척하지 않는 분야에서 1등을 차지하는 경영전략’으로 유명한 그는 먼저 ‘석유에서 섬유까지’라는 목표로 1980년 유공(현 SK주식회사)을 인수했다. 이어 정보통신산업 진출을 맘먹고 준비작업을 진행해 1994년 공기업이던 한국이동통신 지분 23%를 인수했다.
“인간은 석유와 비교도 되지 않는 무한한 자원이다”는 말은 자주한 그는 인간 중심의 경영을 실천했다. 또 미래는 ‘경영 전쟁’이라며 SK의 경영 목표와 실천 방법을 집대성한 ‘선경 경영체제(SKMS)를 정립했다.
“어떤 기업이건 전면적인 무한경쟁에 하루빨리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술이나 자금, 마케팅, 경영관리 등에서 경쟁우위에 설 수 있는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힘들다.”
그가 던졌던 미래에 대한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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