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문은주 기자 = 사물인터넷(IoT)이니 인공지능(AI)이니 첨단 과학 기술이 밀려드는 시대다. 잊을 만하면 머지 않아 로봇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라는 협박까지 나온다. 그런 상황에서 아날로그 투표 방식으로 회귀하는 나라가 늘고 있는 건 주목할 만한 일이다.
지난달 26일 아일랜드에서는 하원의원 157명을 뽑는 32대 총선이 치러졌다. 개표 결과는 일주일이 지난 이달 3일께 완료됐다. 하루만 지나면 개표 결과를 알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수개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개표센터에 모든 투표 용지가 모아지면 1차로 무효표들을 분류한다. 2차 개표 과정에서는 유효표들을 4분의 1로 나눈 뒤 1을 더하는 방식(쿼터)에 따라 기준 득표수를 정한다. 기준 득표수를 확보한 상위 득표자부터 선출자 명단에 올린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고 있으니 선거구별로 3~5명을 가려야 한다. 후보가 10명이면 개표 시간은 더 길어진다.
이렇게 복잡한데 왜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을까. 사실 아일랜드도 2002년 총선 당시 전자 투표 시스템을 시범 운영했었다. 2001년 법 개정 이후 2004년에는 전국에 도입할 기계들을 확보했지만 기계 오류 가능성을 두고 당파간 갈등이 이어졌다. 결국 2009년에는 전자 투표 계획을 백지화하고 연필과 종이 시스템으로 돌아오게 됐다.
유럽에서는 수개표 제도로 회귀한 나라가 적지 않다. 네덜란드에서도 2002년 총선까지는 전자 투표를 활용했지만 2006년 전자 투표 프로그램의 조작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5년 만에 전자 투표를 중단했다. 독일과 프랑스, 캐나다, 덴마크 등에서도 수개표 방식을 시행중이다. 아시아에서는 미얀마가 대표적인 수개표 국가로 꼽힌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사람의 능력만큼 정확할 수는 없다. 인간과 AI와의 바둑 대결만 봐도 그렇다. 3연승을 이룬 알파고는 끝내 오류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 인간 대표 이세돌 기사는 기계도 예상하지 못한 승부수를 던져 한계가 없다는 걸 보였다. 수개표 방식에 더욱 믿음이 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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