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던 그가 영화 ‘널 기다리며’(감독 모홍진·제작 ㈜영화사 수작·㈜모티브 랩·㈜디씨지플러스제공 배급 NEW)를 통해 제대로 된 악인으로 분했다. 연쇄살인범 기범이 된 그는 더욱 싸늘하고, 예민하며 날카롭게 돌변했다. 그리 쉽지 않았던 악인의 정의. 배우 김성오(38)를 만났다.
정말 ‘머시니스트’의 크리스찬 베일 같았다.
- 어우. 감사하다.
사실 16kg나 감량했다고 했을 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기범이라는 인물의 예민함이 그대로 느껴지더라.
- 다행이다. 사실 저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살을 뺀 것이 몸을 보여주려는 것이 다가 아니니까. 그 사람의 성향, 성격을 대변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덜컥 16kg나 빼겠다고 한 것이 대단하다.
- 처음에 감독님이 사진 한 장을 보여주셨다. 크리스찬 베일의 사진이었는데 민수(오태경 분)나 기범이 둘 중 한 명이 살을 뺐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셨다. 영화적인 재미를 추구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보니 왠지 제가 살을 뺐으면 하시는 것 같았다. 하하. 마침 저도 기범이라는 인물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서 살을 빼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니 어땠나? 외형적인 측면에서 기범이라는 인물이 마음에 들었나?
- 사실 만족스럽지는 않다. 더 괴기스럽게, 괴이하게 보였으면 바랐다. 살을 빼서 보여줄 수 있는 것에서 조금 더 징그러웠으면 했다고 할까? 영화를 보고 나니 ‘조금 더 뺐으면 좋았을 텐데’ 싶더라.
개인적으로는 지난 악역들의 잔상을 지울 정도로 강렬했다.
- 제대로 된 악역을 보여줘야지 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동안 맡았던 악역은 표면적인 부분이 있었다면 이번 기범 역은 사람, 그 내면에 대해 많은 할애를 했다. 그런 부분에 욕심이 깊었던 것 같다. 악에 대한 감정선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
악에 대한 감정선?
- 시나리오를 보며 느낀 건데, 많은 분이 악의 표면적인 부분에 열광하지 않나. 하지만 악의 원천을 알게 되면 더 섬뜩하고 무섭다. 그런 것들에 집중했던 것 같다.
표면적인 것보다 내실에 더 충실했던 이번 기범은 어땠나. 김성오가 만든 기범이란 인물은?
- 근본적으로 우월감에 휩싸인 인물이다. 그게 기둥이었다. 살인하는 것이 못 되게 보여야 하고 우월감에 심취된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그게 기초였다. 사실 영화를 보면 기범이 살인을 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딱 한 번, 구급차에서 잔인하게 살해를 하는데 그 장면에서 인간 이상의 어떤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쇄살인마기 때문에 일반적 사람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면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간 이상의 모습이라면?
- 말 그대로다. 사실 그 장면에 대사가 있었다. ‘뜨거운 커피 향 같다. 피 냄새가 너무 좋다’는 식의 대사가 있었는데 이 대사를 줄줄 읊는 게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이건 느낌으로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직 표정으로만 표현하려고 노력했었다.
영화를 보면 악역임에도 제일 고생이 많더라. 물에 빠지고 얻어맞기도 하고.
- 맞다. 하하. 내가 악역인데 왜 만날 나만 맞냐고 농담하기도 했다. 착한 형사를 한 번 때려야 하는데. 하하하.
추운 날 액션이라니 힘들었겠다. 엄청나게 추워 보이던데
- 분식집 앞에서 대영(윤제문 분)에게 맞는 장면이 있다. 비를 맞으며 얻어맞는데 엄청나게 춥고 아프더라. 입도 잘 안 떨어지고. 그래도 추워 보였다니 다행이다. 영화를 보고 고생한 것에 비해 추워 보이지 않는 것 같아서 속상하던 참이다.
악역 대표 배우라고 하더라. 하지만 사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이나 영화 ‘나의 PS파트너’, ‘반창꼬’ 등에서 귀여운 이미지로도 많이 활약했었다. 악역에 대한 고정적 이미지에 아쉽진 않나?
- 아쉽지 않다. 어떤 이미지든 저를 기억해주고 작품을 재밌게 봐주신다면 행복한 일이다. 어떤 기억이든 제 감정을 보여줬다는 거니까. 성공한 거다.
그래도 한 작품이 성공하면 줄줄이 비슷한 역만 들어오지 않나
- 그게 아쉽다. ‘아저씨’가 끝나고 그와 비슷한 역이 굉장히 많이 들어왔다. 속상하기도 했다. ‘시크릿 가든’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이 들더라. 나는 배우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수 있다면 악역이든 선역이든 상관없겠다고. 카메라 앞에서 연기할 수 있고 배우라 불린다면 행복하다고.
‘널 기다리며’ 이후에는 어떨 것 같나?
- 앞으로는 이런 시나리오들이 나올 수 있겠다 싶다. 선이 악을 무찔러가는 일률적인 게 아니라 악도 종류가 많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강도, 연쇄살인마가 아닌 사람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서 악도 얼마나 다양한가. 내가 죽을 때까지 악역을 한다고 해도 다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되면 역할에 대한 또 다른 고민도 생긴다던데.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작품이나 배역에 대한.
- 아직 모르겠다. 아직 아이가 어려서. 하하하.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아직 아이가 있고 가족이 있으니 나쁜 역은 하면 안 된다는 1차원적인 생각은 없다.
‘널 기다리며’를 통해 관객들이 얻어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 희주(심은경 분) 대사 중에 그런 대사가 있다. ‘악한 사람이 악행을 저지르는 것은 선인이 가만히 있기 때문이다’라는. 그 얘기가 굉장히 와 닿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인생도 포함하는 말인 것 같았다. 왕따를 당하는 친구들만 봐도 그렇지 않나. 착한 아이가 참고 받아들이니까 나쁜 아이들이 활개를 치는 거다.
‘널 기다리며’는 김성오의 필모에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나?
- 관객들이 만들어줄 거다. 어떤 작품이 될지는. ‘아저씨’가 내가 배우를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고 나를 알린 작품인 것처럼 나의 작품들은 관객들이 만들어주는 것 아니겠나.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되길 바라나?
- 수많은 사람이 노력해서 만든 작품이다. 모두가 자기 필모에 좋은 작품으로 남길 수 있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 스태프, 배우들 모두. 그들을 위해 잘 됐으면 좋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