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수출자유지역인 마산, 최초의 계획도시인 창원, 최초의 근대 군항도시인 진해는 지난 2010년 창원시로 통합되면서 더욱 단단한 문화도시로 거듭났다.
봄의 길목에서 마주한 창원은 발길 닿는 곳곳마다 저마다의 역사가 서려 있었고 감동과 슬픔이 공존했다.
문화와 역사, 자연을 품은 도시 창원의 곳곳을 돌아보며 보낸 1박 2일간의 여행에서 느낀 감동과 슬픔의 여운은 아직까지도 지워지질 않는다.
창원시에 도착해 어느 곳을 먼저 가 볼까 고민하고 있을 때, 지역민으로 보이는 머리가 흰 중년 남성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창원에 왔으면 예(여기)는 꼭 한 번 가 보이소. 산속에 돌탑이 죽 늘어서 있는데 마이 놀랐다 아입니꺼."
그가 추천한 곳은 바로 마산회원구 양덕동에 위치한 팔용산(해발 328m) 돌탑이었다. 주저 없이 팔용산 돌탑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맑은 공기 힘껏 들이마신 후 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좁다란 계곡길 사이에 마주하고 늘어선 1000여개의 크고 작은 돌탑 군단이다.
과연 누가 쌓았을까. 돌들을 어떻게 이곳까지 운반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 발걸음을 멈췄을 때쯤 우연히 돌탑을 쌓은 장본인 이삼용(68)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본래 공무원이었던 이삼용 씨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옆에서 지켜본 후 통일을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 1993년부터 3월 23일부터 돌탑을 쌓기 시작했단다.
"북녘땅을 바라보며 애끓어 하는 이산가족들을 보며 같이 울었지요. 이들을 도와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1000개의 돌탑을 쌓아보자 생각했지예."
그는 생각을 실행에 옮겼다. 업무를 마치고 매일 새벽에 등에 돌을 짊어지고 팔용산에 오르기 시작했고 그의 돌탑 쌓기는 올해로 24년째 접어들었고 통일에 대한 염원과 절실함으로 쌓은 돌탑은 925개가 됐다.
그에게서 직접 돌탑을 쌓게 된 배경을 듣고 나니 적막을 깨는 계곡물 소리, 산 너머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도 '통일'을 염원하는 간절함으로 들려왔다.
무난한 등산코스 덕에 등산 초보는 물론 노약자도 큰 무리 없이 등산을 즐길 수 있어 본래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가 많은 팔용산이지만 다음에 이곳에 또 온다면 이삼용 씨가 전하는 뭉클한 감동의 메시지를 가슴 속에서 다시 꺼내보리라 다짐해 본다.
◆슬픈 역사 깃든 곳…진해 제황산공원
진해는 지난 1902년 일본이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 군항도시이자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다.
일본은 진해 중앙에 중원 로터리를 중심으로 팔거리를 만들어 남쪽에 남원, 북쪽에는 북원로터리를 각각 설치했다. 팔거리를 만든 것에 대해선 일본 국기인 욱일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는 설에 무게가 실린다.
근현대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진해에는 진해 군항마을역사길, 여좌천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지만 진해 시내를 한눈에 보기 위해 제황산 공원이 제격이다.
이곳을 찾았을 당시에는 벚꽃이 하나 둘씩 피어나기 시작할 즈음이라 약간은 스산한 모습이었지만 4월에 접어들면 일년계단이라 불리는 365계단 양쪽에 만개한 벚꽃과 개나리가 장관을 연출한다.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봄날의 정취를 만끽하는 방법도 좋지만 많은 이가 제황산 모노레일카를 통해 좀 더 쉽게 오를 수 있다. 장애인과 노약자에게는 모노레일카가 더없이 반가운 운송수단이다.
특히 전국 최대의 벚꽃축제인 진해군항제 기간에는 벚꽃 만발한 진해 시가지를 보기 위해 이 모노레일카를 이용해 진해탑까지 오르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산 정상에는 본래 일본이 1905년 러일전쟁 승리 기념으로 군함 모양을 딴 기념탑을 세웠다가 해방 이후 일제 잔재라며 없앤 후 해군 군함을 상징하는 9층탑으로 다시 세웠다.
창원 팔용산 돌탑이 뭉클한 감동의 울림이라면 진해 제황산 공원은 울분의 울림이 서린 곳이었다.
계단을 이용해 올랐으면 좋았겠지만 쉽고 빠른 모노레일카를 이용해 제황산 공원에 올랐다. 진해탑 전망대까지 엘리베이터를 타려고 했건만 아쉽게도 공사 중이라 9층 높이를 걸어 올라갔다. 진해 시가지를 보겠단 생각보다는 욱일기를 형상화했다는 팔거리를 확인하기 위한 마음이 강했다.
욱일기처럼 생긴 팔거리와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진해 시가지를 한눈에 담으니 시가지 풍경이 더욱 애잔하게 다가왔다.
아마도 벚꽃이 아직 피기 전 소박한 진해의 모습에 가슴 아픈 역사까지 뒤엉키면서 더욱 처연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진해에는 제황산 공원 외에도 진해 군항마을, 진해우체국,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해군사관학교 등 진해의 근대사를 한눈에 훑을 수 있는 다양한 탐방코스가 있다.
일본이 개입되지 않은 곳이 없지만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지역 역사에 능통한 문화해설사와 함께 진해 곳곳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여행정보
-어떻게 갈까?
창원까지 가는 방법은 자가운전을 해서 갈 수도 있고 버스를 타고 갈 수도 있지만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KTX를 타는 방법이다.
서울역에서 창원중앙역까지 KTX를 타면 약 3시간 걸린다. 진해 군항제를 보려면 창원중앙역에서 내려 210번을 타고 은아아파트후문 정류장에서 151번으로 갈아탄 후 경화역에서 하차하면 된다.
-무엇을 먹을까?
봄철을 맞아 도다리쑥국을 맛볼 것을 추천한다. 자연산 횟집 바다바다(055-284-7088, 055-286-2900)에서는 쑥을 가득 넣은 도다리쑥국(1만2000원)을 별미로 맛볼 수 있다.
임진각 식당(055-256-3535)은 석쇠 불고기(1만6000원)과 소국밥(7000원)을 잘 한다. 달콤하면서도 쫀득한 식감이 살아 있는 석쇠 불고기는 2인 한 접시가 적당하다. 얼큰하면서도 고소한 소국밥 한 그릇 곁들이면 뱃속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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