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상훈 기자 =동양사학, 서양사학, 국사학 따위는 많이 들어본 학문명일 게다. 그렇다면 '한국학'은 어떨는지. 한국에 대한 이런저런 것들을 다룰 거라는 막연한 추측은 되지만 왠지 생소한 느낌이 들지 않은가?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은 한국학 진흥을 위해 지난 1978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재단법인이다. 현재 명칭은 2005년 2월 쓰기 시작했다. 한중연은 한국문화의 인문·사회과학적 연구, 한국 고전자료 수집·번역·출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편찬 등 '한국적인 모든 것'을 조명하고 이를 국내외로 전파하는 일을 담당한다. 이제 한국학이 어떤 학문인지 감이 올 테다.
한중연은 경기 성남 분당의 하오개로에 자리잡았다. 이배용(69) 원장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주친 이 곳 풍광은 '연구원'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주변 환경, 즉 한적한 분위기와 좋은 경치, 그리고 맑은 공기 등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원장은 "예전엔 접근성이 떨어졌지만 요즘은 교통이 발달해 그런 불편함은 다소 해결됐다"며 "평일·주말 할 것없이 한중연을 둘러보기 위해 오는 시민들이 많다"고 첫 말을 뗐다.
그는 2006년부터 4년간 이화여대 총장직을 수행한 후 2013년 9월 한중연 제16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역대 원장 중 유일한 여성 원장이다.
◆ "북경에 이배용 모르는 사람 없어"…'한중인'으로 살아 온 23년
지난 2월29일 이 원장은 21세기한중교류협회와 주한중국대사관이 개최한 신년인사회에서 '자랑스러운 한중인 상'을 수상했다. 2011년부터 '한중정책포럼'을 이끌며 양국 문화교류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는 1992년 우리나라가 중국과 수교를 맺기 한 해 전 이미 중국을 방문했고, 수교 이듬해부터는 역사학자이자 교수, 한국여성연구원 원장으로서 중국의 개방에 주목했다. "중국의 미래를 미리 인지했다고 할까요?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국토, 인구, 사회 등 여러 면에서 난제를 안고 있던 '잠자는 호랑이'였지만 개방 이후엔 달라질 거라고 생각했죠."
이화여대 교수였던 1993년 그는 한국 대학 최초로 한중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중국 측이 경제적인 어려움을 표해 미국 유나이티드 보드(United Board) 재단에서 펀딩을 받아 중국 학자들을 초청했던 그는 "중국과의 관계에선 역시 '꽌시'(关系, 관계)가 중요해 신뢰를 쌓아가야만 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지금까지 40여 차례 중국을 방문했고, 지난 23년간 '한중인'으로서 살아 왔다. 한 번은 낙양 문화청장이 '북경에 갔더니 이배용 모르는 사람 없더라'는 얘기를 꺼냈다."고 덧붙였다.
이 원장의 관심은 중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최근 바른사회운동연합에서 발족한 교육개혁추진위원회에 참여했다. "사회의 갈등과 문제의 해법은 결국 교육입니다" 그는 천생 '선생님'이었다. 교육자로서 국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닌 그는 "난제들이 산적하지만 교육적 가치를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 시스템·프로그램이 바뀌어야 하고 특히 인성교육이 강조되어야 한다."며 위원회 참여 계기를 밝혔다.. 그는 앞으로 대학 총장뿐만이 아니라 교육감, 초·중·고 교사들과도 연대해 교육개혁에 동참할 계획이다.
◆ "문화재는 우리의 보석"…'품격있는 공개'로 대중에 다가가야
이 원장은 역사학자이지만 문화재 전문가이기도 하다. 지난 달 27일엔 경복궁 '집옥재' 작은도서관 개관식에서 왕실문화 특강을 한 바 있다. 그는 문화재와 관련해 가장 아쉬운 점으로 "보석(문화재)을 몰라보고 지나치는 것"을 꼽으며 "문화를 조금 더 겸손하게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찬란하게 빛나는 선조들의 유산을 제대로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낀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이라.
그는 190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당했던 고종이 "우리는 문화가 있는 나라다. 우리를 만만히 봐선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을 언급하며 자긍심과 자존심을 강조했다. 후손들에게도 유효한 문화재가 되려면 문화재의 겉만 보지 말고, 그것을 만들었던 이들의 지혜, 창의성까지 보려는 정성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시대에 맞는 문화창조를 위해서는 먼저 전통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해요."
한중연은 지난 1월 장서각의 대중화, 세계화를 공표했다. 장서각은 조선왕실의 도서관으로 국가왕실문헌, 어제 어필류, 왕실 탁본자료·고문자료, 군영자료, 한글소설류 등 10만여 책의 국가왕실도서와 전국에서 수집한 민간고전적 4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 원장은 최근 미술관과 박물관들의 '수장고 개방' 유행을 거론하며 "개방은 이벤트성으로 해선 안 되고, 개방 배경과 내용 등이 알찬 '품격 있는 개방'이 되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전국 중·고등학교가 '들썩'…한중연 '찾아가는 한국학 콘서트'
한중연은 근래 이른바 '핫한' 프로그램 두 가지로 대중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전국 중고등학교 재학생, 해외지역 동포, 한국학 학생과 연구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2016 찾아가는 한국학 콘서트'와 세종시 공무원들에게 역사·미술·경제 등 다양한 교양을 전달하는 '찾아가는 한국학 아카데미 2016'이 그것이다.
특히 올 12월까지 진행되는 한국학 콘서트는 신청 접수를 받자마자 매진될 정도로 인기다. 이 프로그램은 한중연의 내로라하는 연구원들이 △'최치원, 세계화의 중심에 서다' △'삼별초의 대몽항쟁과 자주정신' △'공정과 합리의 상속문화, 분재기' △'드라마로 보는 한복 이야기-주몽에서 해품달까지' 등 인문·사회·미술·역사 각 분야의 이야기를 참가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풀어내는 것으로 소문이 났다.
이 원장은 한국학 콘서트에 참가한 학생들의 소감문들을 보여주며 "감동 그 자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박제된 지식이 아니라, 스토리 텔링이 가미된 '살아 있는' 문화를 전파하는 것에 본인은 물론이고 강사, 어린 학생들이 교감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세종시 공무원들이 정책을 세우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서는 다채로운 배경 지식이 필요한데, 한국학 아카데미가 그런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 사업들 외에도 한중연은 '신동국여지승람'이라는 향토문화대전을 70개 지자체들과 함께 준비 중이다. 이 사업은 대중이 사극 드라마를 보고 역사에 대한 흥미를 갖는 것처럼 '역사의 징검다리' 역할을 목표로 한다. 이 원장은 "문화, 인물, 역사, 산업 등의 고문헌을 해석하고 거기에 이야기의 살을 붙이는 작업이 필요한데, 여기엔 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운을 뗐다. 17만 권의 고문헌을 다루고 더 나아가 이를 번역, 디지털화하려면 국가적인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말이다. 그는 "광복 70주년 사업으로 현재까지 총 6권을 발간했고, 앞으로도 발간해 나갈 예정"이라며 "해외 학술 지원사업 등 한국학을 세계에 확장하며 다국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청년들, '주·전·자 정신'으로 내일을 준비해야
역사학자, 교수, 문화재위원, 대학총장, 한국학연구원장 등등 다양한 길을 걸어 왔지만 이 원장은 기실 '선생님'으로서의 역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
이런 그가 요즘 한국의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그는 '주·전·자 정신'을 명토박았다. "자기 자신과 나라에 대한 주인의식, 개성과 적성에 맞는 전문성, 그리고 쭈뼛쭈뼛하지 않는 자신감, 이 세 가지를 갖고 내일을 준비하면 극복하지 못 할 것이 없어요" 이어 그는 "민족의 선진화를 위해서 온 마음을 다한 사람"이라며 세종대왕의 리더십을 끄집어 냈다. "왕으로서뿐만이 아니라 인간 이도(李祹, 세종대왕 본명)의 진정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지요."
'문화융성'이 화두인 시대, 한국학과 한중연은 여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이 원장은 "문화라는 것은 허황된 구름을 잡는 것이 아니다"며 "문화를 만든 사람이 엄연히 존재하고, 시대의 장마다 열정과 창의가 깃들어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에 따르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전통'에 있다. 그래야 세계화, 선진화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융성의 뿌리가 되는 전통문화유산이 있는 곳이 바로 한중연"이라며 "유·무형의 기록유산을 고정된 박제에 그치게 하지 않고, '법고창신’(法古創新,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함)의 정신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고희(古稀)에 다다른 그가 나지막이 이어나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겸허한 책임감이 짙게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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