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문은주 기자 = 테레사 메이 영국 내무장관이 '제2의 대처', '역사상 두 번째 여성 총리'라는 타이틀과 함께 화려하게 신임 보수당 대표이자 총리로 등장했다. 오랜 정치 이력과 리더십은 일단 합격점을 받은 모양새다. 다만 유럽연합(EU) 탈퇴 협상과 정치권 분열 봉합 등 해결해야 과제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조용한 리더십'으로 EU 탈퇴 본격화하나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EU 탈퇴 협상 문제다. 국민 400만 명 이상이 재투표를 해야 한다고 청원 릴레이를 펼치고 있지만 메이 장관의 입장은 명료하다. BBC 등 현지 언론이 11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메이 장관은 "국민이 EU 탈퇴에 찬성한 만큼 탈퇴를 추진할 것"이라며 "재투표나 EU와의 우회적 재결합은 없다"고 못 박았다.
협상 시기는 내년 이후에나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메이 장관이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올해 안에 EU 탈퇴 협상을 시작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강조해온 데 따른 것이다. 즉각 협상 개시를 촉구해온 EU 입장에서는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협상이 시작되면 이민자 유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EU 역내 '이동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방향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이민자 문제는 이번 국민투표 실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경제적으로는 '노르웨이 모델' 형식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노르웨이는 EU 비회원국 중 하나지만 대부분의 분야에서 관세 없이 EU 국가와 무역을 하고 있다. EU의 정책 결정에는 참여할 수 없지만 EU 법률과 규정을 준수해야 하고 기부금도 내야 한다.
메이 장관은 '조용한 리더십'으로도 유명하다.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1998년 정계에 입문한 뒤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2002년에는 보수당 사상 최초의 여성 당의장에 임명됐다. 2010년 보수당 정부가 출범한 뒤에는 내무장관에 올라 지금까지 최장 기간 재직 중이다. 보수당 안팎에서는 “내무장관 재임 경험이 EU와의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 기득권 흡수·정치권 봉합 등 해결과제 산적
메이 장관은 당 대표를 확정지은 자리에서 "강력한 리더십, 정치·경제적 단합, 새로운 영국의 미래에 대한 긍정적 비전을 기반으로 하겠다"며 "소수 특권층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부유층 출신인 캐머런 총리와는 달리 평범한 가정 출신인 메이 장관은 일단 현실주의적 정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일단 친(親)노동자·친(親)서민 정책을 앞세울 가능성이 크다.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세웠던 '근로자 이사제'의 도입이 대표적이다. 근로자 이사제는 기업 이사회에 대표성을 지닌 근로자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는 제도다. 그동안 봐주기식 평가, 끼리끼리라는 비판을 받아온 사외이사제의 대안으로 나온 제도다. 기업 등 기득권의 반발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11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메이 장관은 이밖에도 △ 주주가 경영진 연봉 책정(임원 보수지급안) △ 노동자와 기업가의 임금 격차 해소 △ 탈세 단속 △ 주택 보급 확대 △ 에너비 비용 부담 해소 등을 제시했다. 기존 기득권층의 특권을 제한하는 대신 친서민 정책 행보를 계속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지난 1997년 하원 입성 당시 기업 부담을 줄이기 위해 최저임금제를 반대하는 발언을 수차례 한 것으로 알려져 족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일부 나온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 이후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정치권을 봉합하는 것도 숙제로 남아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메이 장관의 총리 취임을 두고 '유명한 무명(a known unknown)의 승리'라고 표현했다. 올해 초만 해도 2019년까지 성공 가도를 달릴 것으로 예견됐던 대세 정치인 3인(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조지 오스본 재무장관·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을 제치고 보수당 대표 겸 신임 총리로 부각됐다는 점을 빗댄 말이다. 메이 장관은 12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면담을 갖고 13일 공식 취임한다. 15일에는 내각 구성과 보수당 개편 등을 단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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