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인수·합병(M&A)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른 삼성그룹이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순수 개발에 무게를 실어주던 과거에 비해 M&A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15일 삼성그룹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2014년 8월 사물인터넷(IoT) 개방형 플랫폼 개발업체 스마트싱스를 시작으로 이달 미국 프리미엄 주방가전 업체인 데이코에 이르기까지 2년 사이에 14개 업체에 대한 M&A 또는 전략적 투자를 단행했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그룹은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사업 구조개편을 실시했는데, 여기서도 대규모 빅딜, M&A가 있었다.
삼성전저의 M&A·투자 대상 업종은 IoT와 클라우드 서비스·프린팅 솔루션·인공지능 등 신기술 분야와 모바일결제 등 금융 분야, 스마트카·전기차·전장사업 등 자동차, 빌트인 등 B2B 가전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들은 삼성전자의 사업 포트폴리오였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정보통신기술(ICT), TV 및 생활가전 등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만 규모의 사업을 전개해왔던 삼성전자의 특성상 집중할 수 없었던 분야다.
이들 업종은 삼성전자의 사업군을 묶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삼성그룹 전체 사업군, 즉 전자·금융·건설 및 중공업·바이어 등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융합과 연결을 강조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의도와 부합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가 지난 11일 인수 계약을 체결한 미국의 대표적인 주방가전기업 데이코는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사업 확대를 추진해오던 B2B사업을 강화시켜 줄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개별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B2C에서는 높은 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지만, B2B 시장은 시장이 전혀 다르게 형성 되어 있기 때문에 진입이 쉽지 않았다. 즉, 빌트인 가전은 부동산·건설업체와의 네트워크가 사업 진입의 성공 요소가 되는데 이 네트워크는 신규업체가 진입하기 어려운 높은 장벽이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인수한 데이코의 자산은 빌트인 가전 제품이 아니라 데이코가 보유한 고객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다.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 기술을 갖고 있는 프린터온,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조이언트, 빅데이터 기업인 프록시멀데이터, 상업용 디스플레이 전문기업인 예스코일렉트로닉스 등도 마찬가지로 B2B 시장을 보다 쉽게 진입하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있다.
삼성전자가 약 2억5000만달러를 들여 인수한 루프페이는 이재용의 삼성그룹이 얼마나 큰 변화의 시기를 겪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루프페이는 삼성페이의 핵심 기능인 ‘마그네틱 보안 전송’ 특허기술을 가진 업체다. 반도체와 피처폰의 성공에 사로잡혀 있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반, 기술우위의 자부심이 최고조였던 삼성이라면 M&A 대신 직접 개발하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삼성전자는 루프페이를 인수했고, 삼성페이를 단시일에 성공궤도로 올려놨다.
이러한 삼성의 변화는 M&A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기업이 돈을 버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는 ‘분모경영’과 파이를 키우는 ‘분자경영’을 들며, “많은 기업들이 불확실성이 적고 단시일 내에 성과를 얻는 분모 경영을 선호하고 있지만 미국 실리콘벨리에서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막대한 돈을 쓰는 분자 경영을 하고 있었다. 비록 100건의 투자 중에서 성공하는 경우가 두세 건에 불과하더라도 일단 성공을 거두기만 하면, 투자의 수백, 수천 배에 달하는 이익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과거의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분자경영의 투자를 D램·메모리 반도체와 같은 ‘순수 개발 투자’로만 이해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 시대 들어 ‘기술을 보유한 기업 투자’로 범위가 확대됐다. 재계 관계자는 “투자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린 후 삼성은 M&A를 좀 더 자유롭게 전개하고 있다”면서 “삼성의 M&A 전략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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