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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디킨스 소설 ‘두 도시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이 말 만큼 현재의 현실을 잘 대변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유례없는 더위와 불황을 격은 서민들이 추석을 맞아 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현대자동차에 이어, 철도, 화물, 병원, 금융 파업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다. 이들은 (화물연대를 제외하고) 다른 업종에 비해 비교적 넉넉한 급여를 받고 있다. 현대자동차 근로자 평균 임금은 1억원에 달하는 높은 수준 (토요타, 폭스바겐, 현대자동차 미국 알라바마 공장보다 높다.)인데도 국내외 경제실정을 외면하고 올려 달라 파업을 하는 것에 거의 모든 국민들이 공감하지 않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파업쓰나미’가 국가경제, 대외신뢰도, 국민정서에 막대한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철강·해운산업 위기, 심화되는 북한 핵위협, 경주 지진, 대규모 중국어선 영해침범, 청년실업 심화, 수출감소 등 매우 우려할 만한 상황을 맞고 있다.
오죽하면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이 협력업체의 피해가 가중되어 현대차 불매운동까지 선언하고 나섰겠는가. 현대자동차 그룹은 최근 중국 창저우, 멕시코 등지에 잇달아 공장을 설립했다. 최근 20년 동안 국내 공장을 한 곳도 늘리지 않았다고 한다. 기업의 글로벌 전략 측면도 있겠지만 노조파업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부와 업계가 손을 잡고 가을 관광과 세일즈 페스타 등을 통해 내수를 살려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추진동력이 돼줘야 할 철도와 물류가 오히려 걸림돌이 돼 안타깝다. 주력산업인 철강· 조선의 급격한 쇠락으로 일터를 잃고 시름에 젖어 있는 근로자, 정규직의 3분의 1에 불과한 급여를 받으며 언제 해고될지 불안해하는 비정규직 근로자, 고시촌 쪽방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취업준비생들을 생각했으면 한다.
회사 경영자도 잘못이 없다 할 수 없다. 역외투자를 가장한 탈세, 회사의 파산위기 와중에도 고액의 연봉 챙기기, 협력업체와 운전원에 대한 비인격적 대우 등 재벌총수 일가의 도덕적 해이는 근로자와 사회적 불신을 초래하기에 충분했다. 노사가 파업의 악순환을 되풀이 한다면 현대자동차는 물론 다른 기업도 해외진출을 늘려갈 것이고 그만큼 국내 일자리는 줄어 들 것이다.
산업계 파업에 더해 한 정당대표의 단식을 비롯한 20대 첫 정기국회의 파행은 답답함을 더했다. 숭고한 목표를 위해 희생한 지도자를 보고 싶다.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의 시선이 곱지 않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우리 경제상황을 ‘퍼팩트 스톰’ (두 가지 이상의 악재가 동시에 발생하는 금융·경제 위기 현상)이라고 한다.
4차산업 혁명의 물결이 몰려오고 있고 중국에 이어 풍부한 천연자원과 젊은 노동력을 갖춘 인도와 동남아 국가들의 도전이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속성장을 이룩해 내며 풍요한 삶을 누려왔다. 그러나 우리 경제를 지탱해 온 주력산업들이 점차 경쟁력을 잃어 가며 국가경제 미래에 어둠이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다음세대가 더 걱정이다. 산업성장을 이루어 낸, 베이비부머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역군들이 자부심에 안주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됐다. 자녀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신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것 또한 그들의 숙명적 책무다. 이제 노사정간의 불신, 규제, 이기주의 등의 장벽을 걷어 내고 국가발전의 새로운 길을 열어나갈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한 플랜과 액션을 취해야 할 골든타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아 보인다. 전제조건은 각자가 지나친 욕망을 내려놓고 자신의 형편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자신 못지않게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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