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걷기왕’ 백승화 감독이 전하는 낯선 위로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입력 2016-10-25 14:17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걷기왕'의 백승화 감독[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이토록 낯선 위로라니. 이제까지 “꿈이 없어도, 포기해도 괜찮다”는 말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백승화(34) 감독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상대에게 다시금 묻는다. “그래도, 괜찮지 않으냐고” 말이다. 그간 어른들이 해왔던 이야기와는 다른, 열정도 패기도 없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따듯하고 깊은 이야기는 그 어떤 위로보다 더 진한 여운을 남겼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위로할 줄 아는 어른의 독려인 셈이다.

영화 ‘걷기왕’(감독 백승화·제작 ㈜인디스토리·공동제작 AND·제공 배급 CGV아트하우스)은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시리즈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백승화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백 감독은 선천적 멀미 증후군을 앓는 소녀를 통해 무한 경쟁 사회를 조명, 조금은 느려도 괜찮다는 따듯한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걷기왕' 백승화 감독[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애니메이션부터 다큐멘터리, 밴드 활동이나 영화 ‘걷기왕’까지. 청춘들에 관해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 요즘 들어 다큐멘터리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 등과 함께 청춘 영화 식으로 묶어서 얘기하시는 것 같다. 전혀 묶일 거로 생각지 않았는데. 하하하. 영화를 끝내고 보니 비슷한 지점이 있겠다는 생각은 있었다. 또래들의 특수성을 담고 싶었는데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같은 건가? 등장인물의 성격 때문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등장인물의 어떤 면이?
- 조금씩 모자라고 부족한 면. 주인공 만복의 경우도 그렇다. 제가 그런 걸 좋아하는 걸까?

영화 ‘걷기왕’은 일반적 청춘영화와는 다른 방향을 걷고 있다
- 보통, 청춘영화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는 방황하던 주인공이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고 그것을 열심히 해서 이뤄내는 서사가 대부분이다. 제가 일본영화를 좋아하는데 일본 청춘영화의 경우가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그런 걸 배제하고 싶었다. 치열한 경쟁의 세계 속, 완주하지 않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처음엔 두루뭉술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디테일이 생긴 지점은 언제부터인가?
- 시나리오를 오랫동안 썼다. 관심 있는 주제나 관련된 공부에 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 조금씩 이야기가 달라졌다. 한참 시나리오를 쓰던 당시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주제가 이슈였다. 열정 페이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열정에 대한 것들, 도전에 대한 강요나 요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던 때가 있었다. 무작정 노력하면 되는가? 또 그걸 당연하게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이런 주제를 가지다 보니 주인공이 ‘쓸데없는 것’을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종목은 스포츠였으면 하도 생각했다. 걷기를 생각했는데 종목이 가진 상징성과 어울리길 바랐다. 뛰는 것보다는 걷는 것! 그런 의미가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백승화 감독 인터뷰 걷기왕[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영화를 보다 보면 감독님이 음악 선별에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 그리고 음악적인 위트가 뛰어나다는 게 느껴진다
- 처음 음악 감독님과 ‘비어있는, 허술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다. 몇몇 레퍼런스를 가지고 이야기를 진행했는데 음악 감독 입장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다. 악기들이 꽉꽉 찬 음악이나 피아노 연주는 오히려 정해진 틀이 있는데 이런 러프한 음악의 경우는 선별이 더 어려웠다.

그래서 무키무키만만수의 ‘안드로메다’나, 타이타닉 OST인 ‘마이 하트 윌 고 온(My heart will go on)’의 리코더 연주가 들어가게 된 건가?
- 음악 감독이 무키무키만만수의 곡 같은 느낌은 만들 수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가져다가 쓰게 된 거다. ‘마이 하트 윌 고 온’의 리코더 연주 경우, 리코더 연주곡이었으면 좋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인터넷에서 ‘브금’(인터넷 게시글의 BGM)으로 사용되던 곡을 듣고 ‘이거다!’라고 생각했었다. 저작권 없는 노래들도 많이 들어봤는데 다들 이 버전들을 재밌어하셔서 그냥 저 두 곡을 쓰자고 한 거다.

인터넷에서나 듣던 ‘마이 하트 윌 고 온’ 리코더 연주를 영화에서 보니 새로웠다. 인터넷 BGM을 그대로 따온 건가?
- 아니다. 새로 연주한 것이다. 플롯 전공자셨는데, 그 삑사리도 능숙한 것에서 비롯되는 거라고 하더라. 그냥 틀려서는 안 된다고.

영화를 보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애니메이션 같은, 또 어느 부분에서는 리얼함을 느꼈다. 그 두 장르가 충돌하지 않는다는 게 신선했다
- ‘걷기왕’은 처음부터 한 편의 동화 같은 느낌으로 느껴지길 바랐다. 소순이의 내레이션이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리얼리티를 벗어나더라도 판타지에 한 발자국 걸쳐져 있었으면 했었다. 그러다 보니 튀는 장면들이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 어떤 장면들은 몰입에 방해가 되는 것 같기도 하더라.
 

배우 심은경[사진=영화 '걷기왕' 스틸컷]


하지만 그런 만화적인 표현들이 영화의 톤앤매너나 연기적인 부분에서의 충돌을 완화시켜준 것 같다
- 그게 중요했다. 사실 우리나라 배우들은 사실적인 연기를 주로 하다 보니 판타지적인 연기가 낯설지 않겠나. 연출이나 촬영 역시 현실적인 것을 구현하는 영화가 많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 영화는 리얼보다는 판타지, 과장과 생략이 있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수지(박주희 분)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장면도 인형으로 대체한 건데, 그게 인형인 게 느껴지더라도 상관없었다. 영화의 톤앤매너가 있으니까. 과장된 연기나 상황에도 조금 완충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애초에 그런 걸 좋아하기도 하고.

하지만 교무실 상담신이나 교실의 풍경은 너무도 리얼하게 느껴졌다
- 그랬나? 하하하. 보조작가인 남순아 작가의 도움이 컸다. 아무래도 제가 학교를 졸업한 지 꽤 돼서…. 비속어나 은어 같은 것들이 시대에 뒤떨어지더라. 너무 옛날 것인 거지!

백승화 감독을 충격에 빠트린 새로운 은어는 무엇이었나?
- 심쿵도 놀랐는데 요즘은 그것 말고 다른 걸 쓴다던데. 은어보다 요즘은 자음만 쓰는 것 같은데 도저히 알 수가 없더라.

백승화 감독 인터뷰 걷기왕[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요즘은 모두 자극적인 것에 취해있는 것 같다. ‘걷기왕’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이유다. 오히려 자극적이지 않으니까. 자극적이지 않아서 우려 되는 부분도 있고
- 자극적인 것은 취향이 아니다. 요즘 스릴러라는 장르가 인기인데 저는 스릴러 영화에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하하하. ‘걷기왕’ 같은 게 제격이다. 쓰면서도 즐거웠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그런 영화를 별로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자연스럽게 스릴러를 권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거다.

자극적이지 않고 수수한 매력을 가진 ‘걷기왕’과, 배우 심은경은 정말 좋은 궁합이었던 것 같다. 심은경과의 작업은 어땠나?
- 심은경처럼 검증된 여배우가 함께해줘서 놀라웠다. 우리 영화보다 늘 큰 현장에서 일했을 텐데, 전혀 불평불만이 없더라. 항상 더 힘들었던 현장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하하. 은경 씨가 시나리오를 보고 만복과 자신이 정말 닮았다고 했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저 역시 은경 씨답게 시나리오를 정리한 것 같다. 제가 요구하는 것을 잘 받아주셨고, 참 편안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