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조선에 주어진 두 번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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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6-11-02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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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호]

경기북부보훈지청 선양담당 오제호

임진왜란은 반만년 민족사에서 당했던 천여 회의 외침 중에서도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전쟁이다. 인명의 손상, 전답의 황폐화, 문화재 소실, 국위 추락, 통치체제 와해 등 막대한 피해가 뒤따랐기에, 이 전쟁은 종전 이래 다시는 경험하지 않아야 할 감계(鑑戒)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임진왜란은 그 전조(前兆)가 포착되었고 이에 대한 방책이 제기되어, 전란을 막거나 그 피해를 줄일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놓쳤다는 점에서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조선은 개국 이래 1592년까지 200년 간 큰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국초 여진족의 발호를 막기 위해 4군 6진을 개척했지만 지속된 여진족의 침입은 1587년 이순신의 녹둔도 전투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일본은 고려 말부터 한반도를 침략해 기해동정, 삼포왜란, 사량진왜변 등이 있었고, 1555년 왜선 70척이 동원된 을묘왜변은 그 규모 면에서도 단순 노략질 수준을 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조선의 군역 체계는 날로 형해화되어 1580년대 30만 명이었던 공부상 병력 중 가용 병력은 수천 명에 불과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9년 전인 1583년 병조판서 율곡 이이(栗谷 李理)는 국방력 강화를 위해 시무육조(時務六條)를 개진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인재를 등용하고, 재용(財用)을 늘리며, 병사를 기르고, 국경 방어를 강화하며, 전마를 확충하고 백성을 교화하자는 것이다.

이이는 이 상소문의 서두에 “옛말에 먼저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대비한 다음에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어 적이 오면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古語有之, 先爲不可勝, 以待敵之可勝, 今之國事, 無一可恃, 敵至必敗).”라며 양병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이 논의는 당색이 달랐던 동인(東人) 대신들의 반대와 같은 서인(西人)들의 무시로 사장되었다.

이후 전국통일(戰國統一)을 달성한 일본은 노골적인 대외팽창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1590년 조선통신사를 파견해 전쟁 준비의 정황을 파악했으나, 당쟁과 아울러 전쟁준비에 따르는 당장의 어려움을 감수하기 싫었던 조정은 전쟁이 없을 것이라 결론지었다. 물론 이러한 결론에는 일본에 대한 오래된 멸시, 혹은 과소평가 또한 영향을 미쳤다.

전쟁이 임박한 1592년 봄 왜관 등지에서 일본인이 본국으로 소환되어 일본의 전쟁 의도가 명백해 지자 비로소 성곽을 보수하고 저수지를 축조하는 등 전쟁준비를 했지만, 15만 7천의 왜군을 감당할 군비를 갖추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이렇듯 당시의 조선은 임진왜란을 막거나 그 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쳤다. 1583년 이이의 양병론이 받아들여졌다면 군역제를 포함한 조선의 국방체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어 외침 자체가 억지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1591년 조정이 일본의 명백한 전쟁 기도에 정상적으로 대비했다면 외침을 일거에 격퇴할 수 은 없을지언정 전쟁이 장기화에 따라 피해가 누적되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전쟁을 산술적인 가능성으로 논하자면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희박한 가능성 때문에 막대한 예산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일이 된다.

인류의 역사를 생각해 보았을 때 전쟁보다는 평화의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류의 긴 역사를 다시 한 번 돌이켜 보면 전쟁은 반드시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비록 당장의 시국이 평화로워 보일지라도, 향후 전쟁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그 피해를 줄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외침 자체를 억지할 수 있 조치를 취함은 대한민국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책무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외침을 준비하는 것에는 적당한 시기 혹은 기회(요즘말로 하면 Golden Time)가 있다. 당시에는 이 두 번의 기회를 모두 놓쳐 조선팔도를 도탄(塗炭)에 이르게 하고야 말았다.

대다수의 우리가 무시했던 ‘대한민국 불바다’의 공언이 각종 실험을 통해 허언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는 요즘, 필요 최소의 대비를 통해 이를 억지할 것인지 아니면 424년 전의 참상을 재현(再現)할 것인지는 그리 넉넉하지 않은 골든타임을 맞고 있는 우리 모두의 결정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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