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공무원인 나조차 관공서를 방문할 때마다 상대 공무원이 많은 서류를 요구하여 불편한 점이 있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상대 공무원이 민원처리에 있어서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사항을 필요 없이 나한테 요구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문이 들 때가 있고, 그것이 나에게 '규제'로 느껴질 때가 많다.
보통 규제는 개인의 이익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익을 위해 만들어지고, 현실적으로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을 의미하는 법령과 예규, 훈령, 지침과 같이 행정청 내부의 사무처리준칙을 의미하는 행정규칙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법령과 행정규칙은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구속하는 '규제'로서 인식하게 되지만 공무원 조직의 입장에서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규정'으로서 인식하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당 민원에 대한 관련된 규정을 적용할 때, 공무원은 그 규정이 해당 민원에 부합하는 규정인지 여부만을 검토할 뿐, 과연 그 규정이 사회 현실에 적합한 것인가라는 '정당성'의 여부는 검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일을 '문제없이' 해야 하는 공무원 입장에서는 그 규정을 정확하고 조속하게 적용하여 처분을 발령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규정이 과연 옳은 것인가라는 '정당성'의 여부는 해당 공무원 입장에서는 부차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로 인해 많은 국민들이 불편함을 겪고 있는 현실에서 공무원은 규정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하며, 그것은 시대가 공무원에게 절실히 요구하고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공무원은 불필요한 규제로 고통 받는 국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정부 내부에서는 지침이나 예규 등을 제정 또는 개정하는 상층부의 공무원과 그것을 집행하는 하층부의 공무원간의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즉 삼자간의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불필요한 규제를 개혁하고, 규제개혁을 통해 정책의 품질을 높임으로써 국민들에게 더 나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그것이 바로 규제개혁을 통해 실현하려는 궁극적 목적이기도 하다.
실례로 내가 몸담고 있는 국가보훈처에서는 비군인 신분 참전유공자 서류 제출 절차 폐지, 대부지원 시 생활수준조사 절차 폐지, 국가유공상이자의 장애인 등록 신청절차 간소화 등 불필요한 규제를 폐지하여 고품질의 행정서비스 제공과 함께 보훈정책이 보훈대상자의 '현실'에 부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공무원은 그들이 만든 '규정'을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이 언급한 일종의 '우상'처럼 절대적이고 불가변할 존재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만든 '규정'이 사회의 '정의'와 '현실'의 영역에 편입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공무원은 사회 현실을 정확히 분석하고, 일상 속에서 어떠한 규정을 바라볼 때 '규정이라서 옳은 것'이 아니라 '과연 이 규정이 우리 사회에 있어 옳은 것인가?'라는 의문을 항상 가져야 한다. 결국 우리는 그러한 의문과 그에 대한 냉철한 답변 속에서 서로 혼잡스럽게 얽혀져 있는 규제개혁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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