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준호 기자 = “예전의 나였다면 열 받아서 (정부와) 싸웠을 테지만, 지금은 내가 어른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정부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는 보겠습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2년 전 실적발표 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대책 논의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같이 대답했다. 그가 언급한 ‘예전의 나’는 2001년 자사 브로드밴드 사업이 규제에 가로막히자 총무성을 찾아가 담당과장 앞에서 휘발유를 뒤집어쓰겠다며 맞서던 시절의 손 사장이다.
손 사장은 정부의 통신시장 개입이 건전한 경쟁과 기술개발을 해치는 요인이라 주장하며 총무성과 대립해왔다. 소프트뱅크는 통신3사로 고착화된 이동통신시장에서 파격 조건을 내세워 타사 고객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키워왔다.
시장 파괴자인 손 사장은 통신요금이 비싸다는 것과 싸다는 것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일본과 유럽의 통신요금은 거의 비슷한 수준이지만, 그들에 비해 일본의 네트워크 품질이 몇 배는 더 우수하기 때문에 결코 비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손 사장은 이동통신 서비스가 갖는 편익 가치 증가라는 부분을 통신요금과 연계해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펼친다.
손 사장은 소프트뱅크의 실적발표를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여러분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으로 인해 이제 별도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어졌고, 녹음기도 필요하지 않게 됐다”며 “자명종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달력·수첩은 더 이상 필요가 없어졌으며, 음악도 들을 수 있게 되는 등 다양한 기능이 스마트폰 한 대로 대체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스마트폰 한 대로 TV와 동영상도 볼 수 있고, 신문과 잡지도 읽을 수 있게 돼 복합적인 서비스를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며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예전에 따로 지불됐던 비용이 통신요금으로 대체되고 있다는 것이고, 서비스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의 ‘이동통신산업과 4차 산업혁명’ 보고서에 소개된 정보정책통신연구원(KISDI) 조사에 따르면, 이동통신서비스의 가입자당 효용가치는 지난해 월 10만2376원으로, 실제 지불요금 월 5만1100원의 두 배 수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효용가치만 따져 봤을 때 2009년의 월 8만1418원에 비해 25.7% 증가했다.
손 사장의 지적처럼 이동통신서비스의 품질 향상과 스마트폰 기능의 확대로 활용 범위가 확장돼 시계는 61.9%, 디지털 카메라는 56.6%, 신문은 50.6%, MP3플레이어는 46.9% 사용량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KISDI의 2016년 설문조사에서도 이동통신서비스 사용을 위해 독서(47.2%), 음주(44.7%), 간식(43.6%), 영화감상(41%) 등을 포기할 수 있다고 이용자들이 응답해 이동통신서비스에 대한 가치를 높게 인식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일본 통신업계 전문가는 "일본에서도 2년 전 아베 총리의 지시로 총무성이 공짜폰을 없애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요금에 직접 손을 대지는 못한다"며 "민간사업자의 통신요금에 직접 개입하려는 최근 한국의 상황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본 통신 관계자는 "통신요금을 인하하기 위해 규제를 가하는 것은 이용자 측면에서는 환영할 수 있겠지만, 정책의 비용 대비 효과는 낮기 때문에 공공요금, 보험료 등 전체적인 부담을 함께 낮추지 못하면 효과가 피부로 와 닿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