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무상이 취임한 지 나흘 만에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관련 외교장관 회의에서 국제외교 데뷔전을 치렀다. '고노 담화'의 주인공인 부친의 후광이 외교 기대감을 높이면서 엇갈린 평가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NHK, 산케이신문 등 현지 언론은 7일 보도를 통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고노 외무상이 영토 문제와 역사 인식 등의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중국·러시아 외교장관과 잇따라 회담을 진행, 아버지 고노 요헤이와 비교되면서 다양한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일단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고노 외무상과의 첫 회담 이후 "고노 외무상의 부친인 고노 요헤이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성의를 보여준 정직한 정치가였다"며 "부친의 영향으로 기대가 높았으나 남중국해 관련 발언은 실망스럽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고노 외무상이 중·일 외교장관 회담에 앞서 열린 다른 회의에서 "중국이 거점을 구축하려는 남중국해 문제에 깊이 우려하고 있으며 무력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모든 일방적 행동에 강력히 반대한다"고 언급한 데 반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노 외무상은 "중국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만큼 대국의 행동방식을 몸에 익혀야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산케이신문은 이에 대해 고노가(家)의 '외교력'이 오히려 고노 외무상에 해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노 외무상의 부친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은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고노 담화'를 작성한 주인공이다.
조부인 고노 이치로(河野一郎) 전 농림수산상도 굵직한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일본 외교의 한 축을 담당했다. 고노 외무상 입각 당시 일본 외교 정책에 대해 관심이 쏠린 이유다. 그러나 아시아 외교를 중시하던 아버지 고노의 '평화주의'적 입장에 대한 기대감이 크게 작용해 외려 고노 외무상의 행보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친의 존재가 고노 외무상의 행보에 플러스로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6일 고노 외무상과 회담한 림족셍 브루나이 외교장관은 외무차관 시절 고노 요헤이와의 교류를 떠올리며 고노 외무상의 취임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도 현역 시절 고노 요헤이가 일·러 관계에 공헌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을 공산당 대회를 앞두고 있는 중국 지도부가 중·일 관계 악화를 원하지 않는 만큼 왕이 부장의 비난도 일시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사히신문 등은 "고노 외무상 자신도 '부친을 알고 있는 다양한 국가의 관계자들을 현장에서 만났고 새삼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자평했다"며 "북한 문제 등 동아시아의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이지만 보람이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고 보도했다.
한편 고노 외무상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안보·경제 분야에서의 협력과 함께 한·일 위안부 합의 이행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강 장관은 "국민 대다수가 합의 내용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국의 입장을 전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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