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옛 수도 잇는 포장도로
[사진 = 카라코룸 가는 길]
카라코룸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420㎞ 정도 남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거리로 따지면 서울에서 부산 정도의 거리다. 몽골에서는 보기 드물게 이 먼 길이 포장도로다. 과거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이 몽골에서는 대표적인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이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이 길을 포장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포장도로이기는 하지만 곳곳에 홈이 파지고 파손된 부분이 많아서 도로의 상태가 나빴다. 10년 전에도 그랬고 2015년 카라코룸에 갔을 때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성도 궁궐도 없는 빈 들판
[사진 = 에르데니 주 사원]
포장도로를 마치 초원길을 지나듯 조심스럽게 달리다 보니 멀리 흰색의 첨탑들이 눈에 들어 왔다. 사진에서 익숙해진 에르데니 주 사원이었다. 녹색 초원 위에 자리한 흰색의 라마교사원, ‘보석처럼 귀중한 사원’이라는 뜻을 지닌 이 사원 뒤편으로 늦은 오후 시간의 태양이 걸려 있었다. 단숨에 달려가 찾아 본 카라코룸의 옛 자리는 에르데니 주 사원 뒤편에 황량한 들판으로 누워 있었다.
[사진 = 카라코룸 옛 성터 ]
한때 세계제국의 수도였던 검은 자갈 땅, 세계를 호령했던 기마 민족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잡초만 무성한 빈 들판에 스산한 바람이 훑고 지나가고 있었고 그 들판을 둘러친 철조망만이 그곳이 과거 대몽골 제국의 수도였던 자리였다고 말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당시의 성과 궁궐들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 옛 수도 지키고 있는 산 위의 돌 거북
[사진 = 산위의 돌 거북]
해가 넘어가기 전에 카라코룸이 자리 잡았던 일대의 모습을 눈에 담기 위해 앞쪽 산에 올랐다. 산 아래서 정상까지 채 100미터가 될까 말까한 낮은 동산이지만 그 곳에 올라서자 주변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 왔다. 산 위에서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은 돌 거북이었다.
[사진 = 카라코룸 발굴 현장 ]
돌 거북은 사라진 옛 카라코룸의 영화를 십장생(十長生)의 영물답게 가장 오래 남아서 전해주고 있는 거의 유일한 상징물이다. 돌 거북은 이 산 위에 하나있고 또 다른 하나는 카라코룸 성터에 남아 있다. 길이 2미터 가량 되는 돌 거북은 아무 것도 남겨진 것이 없는 산의 정상에서 수 백 년 동안 지켜본 영욕의 세월을 간직한 채 빈터로 남은 옛 수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외적을 막아주는 수호신
이곳을 다녀갔다는 한 국내 학자는 성터의 돌 거북과 이 곳 산 위의 거북은 서로 마주 보고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확인해보니 산 위의 돌 거북은 카라코룸 쪽을 보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동쪽으로 두고 바깥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밖에서 오는 외적을 지켜주는 수호신, 멀리 세계로 나가려 했던 당시 몽골의 기상을 나타내기 위해 돌 거북은 머리를 바깥으로 둔 채 멀리 내다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아쉽게도 거북의 등위에 세워져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비석은 간 데 없고 그 자리에는 후인들이 올려놓은 돌멩이만 나뒹굴고 있었다.
▶에르데니 주 사원의 108개 첨탑
[사진 = 에르데니 주 사원 첨탑]
산 위에서 옛 카라코룸성 쪽으로 눈을 돌리니 에르데니 주 사원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108개의 첨탑으로 둘러쳐진 사각형의 울타리와 그 안에 자리한 티베트 불교 사원이 넓은 초원에 펼쳐져 있는 모습은 마치 모형물처럼 보였다.
그 옆에 자리한 옛 성터는 빈 들판으로 남아 있고 그 뒤쪽으로는 낮은 산들이 동서로 길게 뻗어 있었다. 위쪽으로는 낮게 깔린 구름들이 석양빛을 받아 불그스레한 빛을 띤 채 걸쳐져 있었다. 서쪽으로는 오르콘 강이 지나고 그 너머로도 한없이 넓은 평원지대가 펼쳐지고 있다. 그 서쪽 지역에는 과거 위구르 제국의 본영이었던 카르발가순 성터와 돌궐제국의 퀼테킨 비문이 남아 있다. 풍부한 물과 기름진 초지, 몽골고원의 중심부라는 지리상의 이점, 이런 것들이 이곳을 역대 유목제국들의 중심지로 만들었을 것이다. 서쪽 평원 너머로 사라지려는 태양이 일몰의 빛을 비스듬히 넓은 초원위로 비켜 내리면서 빈 들판을 점차 빛이 바래져 가고 있었다.
▶음울한 빛깔의 하르호링솜
[사진 = 하르호링 솜(郡)]
옛 성터를 등에 지고 돌아서면 5천 가구 전후가 돼 보이는 하르호링솜(郡)이 낮은 산을 끼고 낮게, 넓게 펼쳐져 있었다. 대부분 판잣집 형태로 이루어진 민가는 오래된 울타리와 오래 된 나무 집들로 빛이 바래져 어두운 빛을 띠면서 마을 전체 분위기를 음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 지역을 지나는 오르콘강은 마을 뒤편을 지나 서쪽 끝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검은 자갈이 깔린 오르콘 강
오르콘은 폭이 20-30미터 정도로 비교적 좁아 다른 대부분의 몽골의 강들이 그렇듯이 개울 같다는 느낌을 줬다. 강변에는 마을의 이름 그대로 오랜 세월 흐르는 물살에 달아 반질반질해진 검은 자갈들이 지천으로 깔려있었다. 비록 이곳에서는 강폭은 좁아 보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곡지와 폭포까지 만들면서 천 백 Km이상 흘러가는 이 오르콘강이 바로 오랜 세월동안 여러 종족의 유목민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인 촉매제였다.
▶밀농사․목축으로 살아가는 주민
[사진 = 카라코름 근처 밀밭]
좌우로 넓게 펼쳐져 있는 평원지대에 짙은 녹색을 띤 사각형 모양이 여기저기서 눈에 잡힌다. 밀밭들이었다. 이 지역은 밀농사에 적합한 지역이어서 과거 공산정권 시절부터 대규모로 밀을 재배 해오고 있다고 했다. 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하르호링솜 주민들의 대부분은 이 밀농사와 목축을 주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거친 잡초와 독초 가득한 옛 성터
[사진 = 돌 거북과 사원]
과거 카라코룸성이 들어섰던 자리에서는 덩그러니 혼자 버티고 있는 돌 거북과 잡초들이 우거진 거친 풀밭 외에 특별히 눈에 띠는 것은 없었다. 세계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한 도시가 이렇게 흔적 없이 철저히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사람과 가축의 왕래를 막아서 주변의 초원보다 오히려 거칠어진 풀들과 발목과 종아리를 따끔거리게 만드는 독초들만 남아 있는 폐허였다.
한 무리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말을 타고 돌 거북 주위에서 빈 들판을 둘러보더니 이내 떠나버린다. 남겨진 것이 거의 없는 역사의 현장에서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면서 떠났을까? 카라코룸이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쿠빌라이가 대원제국을 세우고 수도를 이곳에서 지금의 북경인 중국 땅 대도로 옮기면서부터다. 때부터 세계의 중심지는 칸이 사는 도시, '칸발릭'이라고 불렀던 대도로 옮겨가고 이곳은 대원제국의 변방도시로 전락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카라코룸의 붕괴는 북원(北元)제국 때 명나라의 공격으로 불타고 파괴되면서 14세기말에는 거의 폐허처럼 무너져 내렸다.
▶카라코룸 석재를 받침돌로 쓴 사원
[사진 = 산위에서 본 사원]
16세기 들어 몽골이 티베트 불교, 즉 라마교를 받아들이면서 옛 성터 바로 옆에 지금 남아 있는 '에르데니 주'라는 티베트 불교 사원이 세워졌다. 이 사원을 건립하면서 몽골인들은 카라코룸성의 석재 등 자재를 뜯어다 사원을 짓는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붕괴 상태에 있었던 카라코룸성은 이때를 계기로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누가 흔적도 없이 파괴했나?
그렇다고는 하지만 대 제국의 중심지였던 곳의 성과 건축물이 이처럼 철저하게 파괴되고 사라질 수가 있었는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적어도 후세의 몽골인들이 자랑스러운 역사적 유적지를 스스로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고는 보기가 어렵다.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중국은 나중 청나라가 들어서면서 2백년 이상 몽골을 지배하게 된다. 수치스러운 중국의 역사에 대한 보복으로 지배의 상징물이었던 카라코룸의 존재를 없애는 데 이들이 일정 역할을 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사진 = 원(元) 상도(上都) 유적지]
그러한 추정은 지금 중국 땅에 있는 쿠빌라이의 여름 수도 상도(上都) 역시 폐허가 된 채 남아 있는 것을 봐도 설득력이 있다. 카라코룸이나 상도 모두 청나라가 고의적으로 파괴를 유도했거나 적어도 페허로 변하는 것을 방치한 책임이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카라코룸․몽골인 같은 쇠락의 길
[사진 = 말 타고 관광하는 일본인]
세계를 정복하고 호령했던 대제국의 기개와 정신은 마치 티베트 불교 사원에 눌린 받침돌처럼 다시는 되살아나지 못한 채 이후 몽골인들은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점에서 카라코룸이 걸어 온 길은 바로 몽골인들이 걸어온 길이나 마찬가지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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