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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배석규 칼럼니스트]
코민테른은 중국의 정세에 개입해 국공합작을 유도한 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소련의 의도는 중국의 공산혁명을 최종 목표로 두고 있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우선 공산당은 힘이 미약했기 때문에 국공합작을 유도해 국민당 속으로 파고 들어가도록 만든 뒤 국민당을 장악하는 수순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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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공산당이 탈취한 국민당 무기]
▶장개석의 반공(反共) 쿠데타
그러나 중국의 상황은 소련이 기대했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국공합작이 이루어진 다음해 손문이 북경에서 사망했다. 이 때 국민당 내부는 좌우파로 분열된 상황이었다. 개인자격으로 국민당에 들어간 공산당원들은 상당한 요직을 차지해 기반을 마련하고 있었다. 모택동은 이때 중앙 집행위원 후보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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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모택동과 장개석]
1,926년 7월 국민혁명이라 불리던 북벌(北伐)에 오른 장개석은 군벌들을 제압하며 군사행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갔다.
그 상황에서 국민당 좌파와 공산당은 국민당 우파와 노선을 차별화 한 뒤 함께 손을 잡고 정부를 무한(武漢)으로 이전시켰다. 무한 정부가 자신을 견제하며 민중운동을 급진적으로 몰아간다고 판단한 장개석은 좌파와 공산당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과 영국 등 외세의 입김까지 작용하면서 1,927년 4월 장개석은 상해에서 반공(反共) 우파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 숙청에 나섰다. 이 때 공산당원의 4/5 정도가 살해되고 만 명 정도만 살아남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차 국공합작의 결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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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30년대 장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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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모택동(1930년대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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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중국 공산당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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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장개석]
▶몽골 급진 사회주의 개혁 시동
1차 국공합작의 결렬은 내몽골인민혁명당까지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코민테른은 내몽골에서 민중 봉기를 유도했지만 성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때까지 유지돼온 코민테른의 지도방침이 파탄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소련은 외몽골에 대한 정책 방향을 확정지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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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1930년대 울란바토르]
▶민족주의에 대한 숙청 바람
우선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담바도르지를 비롯한 지도부는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신 모스크바 유학생 출신을 비롯한 젊은 사회주의자들로 그 자리를 대거 채웠다. 이 때 민족이라는 개념은 소련에게 전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민족의 개념을 건너뛰어서 계급의식을 겨냥한 인민연대가 필요했다. 그래서 소련의 인민과 몽골의 인민의 연대를 통한 공동 목표로 사회주의 국가의 건설을 내세웠다. 자연히 민족주의는 반동사상으로 취급을 받았고 민족주의자는 줄줄이 숙청됐다. 숙청의 바람이 전 분야에 걸쳐 거세게 몰아닥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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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몽골의 사유재산 몰수]
▶소련과 궤를 같이 한 좌파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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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크렘닌의 스탈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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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친구들과 함께 있는 스탈린]
스탈린의 위치가 확고해진 이후에야 몽골의 사회주의 개혁도 비로소 소련의 흐름과 궤를 같이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서 추진된 것이 바로 유목민의 집단화 작업과 종교 탄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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