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neocon)은 신보수주의자(neo conservative)를 일컫는 말로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 외교 정책을 좌지우지한 '매파 중 매파'이다. 이들은 세계를 미국의 손아귀에 두고 대화보다는 협박이나 무력 개입으로 질서를 바로잡고자 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2001~2008)에서 사실상 실질적 권력을 휘둘렀던 딕 체니 전 부통령은 네오콘의 상징적 인물이다.
영화 배트맨 시리즈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찬 베일. 그는 영화 '바이스(Vice)'에서 딕 체니를 연기하기 위해 몸무게를 40파운드(18㎏)나 늘렸다. '바이스'는 부시 대통령 뒤에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던 체니에 대한 전기 영화이자 블랙 코미디이다. 예고편을 보면, 식견 없는 철부지 부시가 체니에게 선거에서 러닝메이트로 뛰어달라고 부탁한다. 체니는 '부통령은 허울만 좋지 아무 실권 없는 직책인데 내가 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시가 얼간이라는 것을 떠올린다. 체니는 부통령으로 출마하는 대신 대통령의 권한 중 골치 아픈 것은 자기랑 나누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알짜' 업무인 인사권, 국방, 자원, 외교 안보 업무에 대한 권한을 가져온다.
영화가 얼마나 사실에 기초했는지는 논란 거리이다. 여하튼 체니는 부시와 손잡고 간발의 차이지만 앨 고어를 선거에서 물리치고 백악관에 입성한다. 그는 자기 코드와 맞는 네오콘들을 주요 공직에 앉혔다. 그리고 9·11 테러를 핑계로 미국 대외정책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라 평가되는 이라크 전쟁을 벌인다. 그는 이라크 개전의 명분이던 사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개발 혐의 조작을 진두지휘했다. 또 미국 시민들의 불법 사찰 등 영화의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영화에는 언급이 안되고 있지만, 체니의 네오콘 세력은 북한을 초강경 자세로 압박한다. 부시 대통령이 2002년 1월 29일 연두교서를 통해 북한을 이라크, 이란과 함께 '악의 축(axis of eivil)로 지목했다. 이리하여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평화 무드가 조성되던 한반도에 다시 전쟁 위기가 감돈다. 부시 행정부는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한 지지를 거부했고,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핵개발 계획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적대적 대북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른바 한반도 제2 핵위기가 시작된다. 북한도 핵동결 해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영변 원자로 재가동 등으로 맞섰다.
딕 체니는 아버지 부시 행정부(1989~1993)에서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북방 정책'을 추진하던 노태우 정부 당시 1991년 말 남북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합의하고 화해무드가 넘쳤다. 당시 주한 미국 대사이던 도널드 그레그의 회고록 '역사의 파편들'을 보면 한·미 양국이 1992년 봄 예정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 '팀 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한 것이 남북 화해의 결정적인 촉매제였다. 그러나 1992년 가을 펜타곤은 연례안보회의에서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하기로 했다. 그레그 전 대사는 "체니 국방장관은 국무부와 나하고는 의논조차 없이 훈련을 부활시키고 말았다"고 회고했다. 또 "나는 그것이야말로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 미합중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였다고 지금도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라크 전쟁에 실패한 부시 정권의 공화당이 2006년 중간선거에 대패해 소수당으로 전락하자 네오콘은 몰락의 길로 갔다. 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위한 정보 조작과 여론 왜곡으로 도덕성에 큰 상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네오콘이 부활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체니와 함께 아들 부시 행정부에서 북한을 '악의 축'과 '불량국가'로 몰아세우고, 필요하다면 군사적 해법을 통한 北의 정권 교체를 주장한 인물이다. 2006년 10월 9일 북한이 제1차 핵실험을 하자 유엔안보리의 對北제재를 이끌어낸 사람이다.
제2차 북미정상회담(27∼28일·베트남 하노이)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비핵화 약속 이행과 관련 어떤 합의를 이끌어 낼지 관심사이다.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곤경에 빠진 트럼프가 소기의 성과에 매달려 포장만 그럴싸하고 알맹이 없는 내용의 합의에 그친다면 미국내 강경파의 목소리는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재선 노리는 트럼프, 북한 카드는 국면전환용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중국학교수는 "트럼프는 현재 연방정부 셧다운과 이민 장벽 설치 문제에 대해 민주당을 설득하지 못해 정국을 장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무리하게 김정은 위원장과 성과가 불확실한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데 대해 공화당 내부의 반발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1차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자 공화당 내 네오콘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라며 "2차 회담에서도 특별한 성과가 없게될 경우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강경대응 목소리는 확대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북핵 문제가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임을 실감한 트럼프는 북핵 문제의 해결을 장기화 전략으로 수정했다"며 "북핵 협상 모멘텀 유지용으로 엉뚱한 합의를 할 가능성도 상존하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리하여 "미국 조야를 설득하지 못하는 합의는 이전 협상과의 차별성은 고사하고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재선을 노리고 있는 트럼프에게 현재로선 북핵 문제보다는 미·중 무역협상이 최대 과제인 듯하다. 그리하여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긍정적 결과가 안 나오면 미·중 무역 분쟁이 확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 교수는 "미국에게 북핵은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항상 중국을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의 운명이 또다시 네오콘에 의해 좌우될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하지만 현재 네오콘의 주 대상은 북한보다는 중국으로 보인다. 북한 카드는 트럼프가 시간을 두고 위기 때마다 국면 전환용으로 써먹을 것 같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국제정치학)는 트럼프가 북핵 협상을 "올 상반기까지는 이벤트성으로 끌고 나가고 하반기부터 선거 모드로 가서 강경하게 나갈 것 같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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