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전당대회가 막을 내렸다. 당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 진용도 새롭게 꾸려졌다. 그런데 큰 산을 하나 넘었다는 안도감은 찾아보기 어렵다. 앞으로 펼쳐질 험난함에 대한 시름만 깊다. 한국당 지지층조차 우려 섞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전당 대회 기간 중 보여준 퇴행적 행태 때문이다. 개혁적인 보수가 아닌 역사를 거스른 극우 민낯만 확인한 전대였다는 목소리가 높다. 5.18망언, 탄핵 불복, 태블릿PC 조작설은 극단적인 우경화를 반증한다. 꼴통 보수란 낙인은 보다 선명해졌다. 득보다 실이 컸다. 낮은 전당대회 투표율과 당 지지율 하락은 그 반증이다.
김진태 김순례 의원은 5.18망언을 주도했다. 당 지지율 하락이라는 악재를 제공했고 비난은 봇물을 이뤘다. 선거 결과는 한국당 정체성을 가늠하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보기 좋게 선전했다. 한 명은 최고위원, 한 명은 20%가까운 득표다. 김순례 의원은 8명 가운데 3위(3만4,484표)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김광림 최고위원(3선), 윤재옥 원내수석부대표(2선), 윤영석 수석부대변인(2선)을 제쳤다. 초선에다 비례대표임을 감안하면 5.18망언을 이용해 극우층을 결집한 결과로 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김진태 의원도 낙선했지만 태극기부대를 등에 업고 18.9%(2만5,924표)를 얻었다. 한국당이 보다 우경화됐음을 의미한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예상을 벗어난 황교안과 오세훈 득표율이다. 황교안은 70~60%대 득표를 예상했다. ‘어대황(어차피 당대표는 황교안)’이라는 대세론에 바탕을 뒀다. 그는 절망에 빠진 보수를 구해낼 구원 투수로 소환됐다. 전직 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이라는 인지도에다 대선 후보 1위가 큰 자산이 됐다. 여기에 TK(대구경북)에서 두터운 지지를 받았다. 반면 오세훈은 약세를 면치 못했다. 김진태보다 뒤진다는 여론조사도 있었다. 더 이상 한국당에 희망이 없다는 위기감에 힘입어 반전에 성공했다. 오세훈은 선거 내내 친박, 태극기부대와 거리를 두었다. 그 결과 황교안 50%, 오세훈 31.1%로 다소 교정됐다. 보수언론은 오세훈에 힘을 실어줬다. 한국당이 망하면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한국당이 제대로 해야 자신들 입지도 가능하다는 전략적 판단에서다. 막판 한국당 우경화를 걱정하는 대대적인 보도는 그런 결과물이다.
김진태 김순례 징계는 선거가 끝났다고 덮고 갈 일이 아니다. 스스로는 선거 결과에 흡족해 하겠지만 당에 큰 해악을 끼쳤다. 국민 정서도 용납하지 않고 있다. 화합이라는 어줍지 않은 이유로 어정쩡하게 봉합한다면 큰 후폭풍이 찾아온다. 황교안 대표 또한 역사를 부정하는 논란을 자초했다. 사법적 판단과 과학적 입증이 끝난 대통령 탄핵 부정, 태블릿PC 조작 가능성을 언급했다. 탄핵은 국회(234명)와 헌법재판소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 또 검찰, 국과수, 법원은 태블릿 PC가 조작되지 않았다고 분명히 했다. 황교안 대표는 법무부 장관, 탄핵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그런 인물이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부인했다는 점에서 두고두고 약점이다. 분명한 입장 표명과 사과, 김진태 김순례 의원 징계가 필요한 이유다.
흔히 새는 양 날개로 난다는 비유를 들어 야당 역할을 강조한다. 수사적인 표현이 아니다. 야당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견제와 비판을 통해 민주주의는 성숙하고 역사는 나아간다. 만일 견제와 비판이 없다면 여당은 오만하기 마련이다. 박근혜 정부가 폭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건강한 비판과 견제가 뒤따라야 한다. 한국당에겐 건강한 보수라는 소임이 있다. 지금처럼 극우 세력에 휘둘려 오락가락한다면 함께 망한다. 정치권은 “민주당은 야당 복(福) 있다”며 한국당을 조롱하고 있다. 제1 야당이라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반대만 하는 야당이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조선 광해군 시절 개혁 사상가였던 허균은 “오직 두려워할 만한 존재는 백성뿐이다”며 위정자들에게 경고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정기관도, 당권을 장악한 대표도, 극단적인 태극기부대도 아니다. 한국당이 오직 두려워할 대상은 국민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가 긴박하다. 언제까지 친박, 진박, 배박 타령만 늘어놓을지, 국민이 두렵지 않은지 묻지 않을 수 없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