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無道)하다.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도리에 어긋난 막된 언행을 뜻한다.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이 그렇다. 더한 표현도 있다. 망나니다. 역시 말과 행동을 함부로 막돼먹게 하는 사람을 욕할 때 쓴다. 그들을 망나니로 불러도 될까. 검사와 대화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것이죠.” 세 명 의원과 자유한국당 행태에 딱 들어맞는다. 사과와 반성은커녕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른다. 국민을 상대로 막간다. 분명히 말하지만 5.18망언은 무도하다.
그들은 생채기를 헤집고 소금을 뿌렸다. 시간에 기대어 이제야 겨우 아문 상처를 후볐다. 40년 전 고통스런 기억을 단박에 소환해낸 그들이다. 국회의원 신분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쏟아낸 망언은 배설행위였다. “폭동이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 5.18유공자라는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내고 있다. 우파가 결코 물러나서는 안 된다.” 역사 왜곡을 떠난 심각한 사실 부정이다. 눈앞에서 자식과 부모를 잃은 참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광주다. 고통과 슬픔도 그대로다. 막장 정치에 들끓는 이유다.
5.18은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사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헌법재판소는 5.18을 촉발한 12.12 군사 반란과 전국 계엄 확대를 국헌 문란행위로 판결했다. 또 이에 맞선 5.18을 민주항쟁으로 인정했다. 김영삼 정부는 5.18특별법을 제정해 이를 뒷받침했고,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웠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5.18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지만원씨를 유죄 판결했다. 이후 국가기념일 제정, 5.18국립묘지 승격, 5.18유공자 보상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2018년 2월 비로소 5.18진상규명특별법이 제정됐다. 이 때문에 5.18망언은 의도된 발언이라는 점에서 용서받기 어렵다.
오늘(18일) 국회에서는 이들에 대한 제명 논의가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제명 필요성에 공감한다. 피 흘려 민주주의 초석을 놓은 5.18 정신을 훼손한 그들이다. 나아가 슬픔과 고통 속에 있는 유가족을 조롱했다. 분명한 잘못을 물어야 한다. 한국당은 이미 국민들로부터 ‘징계 쇼’라고 비난 받았다. 정치인은 자기 말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리다. 면책 특권에 기대 책임을 모면하려 한다면 착각이다. 면책 특권은 아무 말이나 지껄여도 되는 마패가 아니다. 암 덩어리를 잘라낼지 방패막이를 자처할지 판단해야 한다. 온정주의는 함께 망하는 길이다.
독일은 전범국가다. 그러나 낙인을 딛고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다. 독일 정부는 과거 잘못을 솔직히 인정했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했다.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가 보여준 행동은 압축적이다. 그는 1970년 12월 폴란드 유대인 추모비 앞에 무릎 꿇었다.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며 전범국가, 독일의 잘못을 빌었다. 폴란드인들은 감동했고 국제사회도 독일을 성숙한 나라로 인정했다. 진정한 사과는 공감에서 비롯된다. 공감은 상대를 헤아리는 것이다. 한국당이 사는 길도 여기에 있다. 진정한 사죄와 공감, 그리고 단죄다.
만일 망나니 의원들 지키기에 급급 한다면 소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되돌리기 어렵다. 한국당 전반에 이런 시각이 자리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5.18 망언은 사이코패스에 가깝다. 심리학과 뇌 과학자들은 공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이들을 사이코패스로 분류한다. 공감하는 능력은 인간만 지닌 능력이다. 타인과 정서적 연대를 맺지 못하는 이들은 사이코패스, 자폐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은 2%에 불과하다. 나머지 98%는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이 있고 사회적으로 연대한다. 그러니 그들과 선을 긋는 게 맞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설명했다. 다른 사람이 처한 불행에 공감하는 본성을 의미한다.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은 본성을 잃었다. 한국당은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생각한다면 엄정해야 한다. 그럴 때 자폐 정당에서 벗어난다. 국민을 상대로 막가자는 게 아니라면 그래야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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