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희칼럼] ‘혐오’를 혐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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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입력 2019-02-2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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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희 시청자미디어재단 서울센터장·경제학박사.



맘충, 한남충, 틀딱충, 똥꼬충, 외퀴... 어떤 대상이나 집단에‘벌레 충(蟲)'이나 바퀴벌레를 붙인다면? 이건‘혐오'다. 사전에서‘혐오(嫌惡)’를 찾아보았다.‘싫어하고 미워함’. 사람이 느끼는 자극 수준으로 볼 때 매우 강한 감정이다. 뚜렷한 이유없이 공연히 혹은 왜곡하거나 거짓 정보로 특정 대상을 강하게 싫어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다. 분명 잘못된 인권침해 행위다.

책임있는 공적 기관 가운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적극 나선 것은 당연해 보인다. 최근 인권위는 여성과 노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대상으로 한국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는 혐오표현(Hate Speech)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며, 혐오·차별대응 특별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전담조직(혐오·차별대응기획단)을 운영해 혐오표현을 공론화하면서 정부의 종합정책 마련을 촉구하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혐오표현 예방대응 가이드 마련 실태조사와 선거과정에서의 혐오표현 토론회 등의 현안대응에 나선 이후 2라운드에 본격 시동을 건 것이다.

혐오표현은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고 갑자기 튀어나온 문제도 아니지만,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나 들끓었다. 그런데 점점 오프라인까지 범위를 넓히더니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도 옮아갔다. 지난해 서울 혜화역을 뜨겁게 달군 여성단체 집회나 퀴어축제 찬반 갈등, 예멘 난민반대 집회가 좋은 사례다. 급기야 지난해 말에는‘여혐·남혐’발언으로 이수역 폭력 사태까지 빚어졌다.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과 세종리서치가 지난해 전국 성인남녀 1014명을 대상으로 한 국민의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은 사회적 혐오가 과거보다 더 심해졌다(70.8%)고 인식하고, 9명 가까운 국민은 온라인 혐오현상이 결국에는 현실의 혐오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88.6%)고 걱정했다. 혐오현상 가운데 가장 심각한 분야를 남녀(32.2%), 세대(25.8%), 성소수자(12.9%), 이주노동자(7.9%), 난민(6.5%) 순으로 꼽은 것도 흥미롭다.

혐오는 남녀와 노소, 인종의 편을 가르고 소수자를 겨눈다. 혐오표현이 더 악질적인 것은 공격대상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이다. 저항할 수 없거나 어렵고 공격해도 뒤탈이 안나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걸리는 대상을 노린다. 이러니 피해자의 ‘대항발화’도 막는다. 자신이 힘들고 불안한 삶을 야기한 사회구조적 문제나 책임있는 권력자에 맞서지 않고 사회 주변부의 취약한 집단을 찍어 경멸을 퍼붓는 행위는 정당한 분노를 거꾸로 표출하는 행위다. 여기에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집단이 혐오를 부추기고 온라인과 대중매체 등의 미디어가 확대재생산한다.

혐오의 근원은 차별 혹은 불평등이다. 불평등과 차별을 시정하는 것이 근본 처방이지만 문제는 혐오가 차별적 구조에서 싹트고 차별을 공고화·가속화한다는 점이다. 혐오표현은 대상자에게 극심한 정신적 피해를 주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박탈하는 등 실질적 차별로 치닫고 어떤 계기를 만나면 증오범죄 등의 폭력으로 이어지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

가장 선진적인 제도를 운용하는 나라로 꼽히는 독일은 혐오 관련 선동 행위를 형법으로 처벌하고 있다. 지난해 1월부터는 인터넷에서의 혐오표현을 규제하기 위해 ‘SNS에서의 법 집행 개선법’을 시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포괄적 차별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려는 시도가 10년 전부터 있었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현재 지난해 발의된 한건의 법률안이 계류 상태다.

법률로 단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것이라는 지적도 여전하다. 그러나 혐오표현 금지법 혹은 차별금지법이 공격자들에게 정부와 영향력이 큰 집단이 혐오를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효과는 실로 클 것이다. 사실 강력한 처벌 조항을 갖고 있는 유럽도 실제 처벌은 유명인 등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을 중심으로 드물게 이뤄진다. 국가가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차별과 혐오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상징성에 더 의미를 둔 것이다. 사회적으로 어떤 것이 차별이고 하면 안되는 일인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는 기능도 할 것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과 가정폭력방지법이 제정되면서 장애인 차별과 가정폭력이 범죄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지 않았는가 말이다.

법이 제정되고 시행된다고 해도 처벌보다 피해자를 돕고 예방하는데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가장 좋은 규제는 혐오표현이 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는 환경을 만드는 ‘지지규제’다. 국가가 지원 시스템을 갖추고, 피해자와 시민들이 연대해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는 선순환을 만들어내야 한다.

혐오표현은 그저 내 마음의 감정 상태가 아니라 차별과 폭력을 정당화시키므로 뿌리 뽑아야 한다. 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Speech acts),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와 ‘혐오할 권리’라는 이유로 옹호될 수 없다. ‘혐오’를 혐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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