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은 577년에 만들어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 공예품인 보물 제1767호 부여 왕흥사지 사리기 일괄(2012년 6월 29일 지정)을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로 명칭을 바꿔 국보로 지정 예고하고,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등 조선 시대 불화와 서책 3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국보로 승격 예고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2007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백제 왕실 사찰인 왕흥사터의 목탑지에서 발굴한 유물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 알려진 사리기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출토 당시 금당(대웅전) 앞 목탑지의 사리공(사리기를 넣은 네모난 구멍)에서 진흙 속에 잠긴 채 발견됐다. 사리기는 부처나 승려의 참된 수행의 결과로 몸속에 생겼다는 구슬 모양의 유골인 사리를 보관한 용기를 말한다.
사리기는 겉에서부터 순서대로 청동제사리합-은제사리호-금제사리병 순의 3가지 용기로 구성돼 청동제사리합 겉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577년(위덕왕 24년)에 만들어진 사실이 확인됐다. 명문에 의하면 이 사리기는 백제 위덕왕이 죽은 왕자의 명복을 빌고자 발원한 왕실 공예품이다.
6세기 전반 사리공예품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는 백제 왕실 공예품이라는 역사적․예술적 가치, 현존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절대 연대를 가진 작품이라는 희소성과 뛰어난 작품성으로 우리나라 공예와 조형 예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높아 국보로 지정하기에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보물로 지정 예고된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740년(영조 16)에 영산회상도, 제석도, 현왕도, 아미타불도와 함께 조성돼 대둔사에 봉안됐던 작품으로, 이 중 삼장보살도만 유일하게 전해오고 있다.
세로 238cm, 가로 279cm의 대규모 화면에 천장보살과 지지보살, 지장보살 등 세 보살의 모임을 묘사한 그림으로, 월륜, 치흠, 우평 등 18세기 경상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승들이 제작에 참여했다.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높은 수미단(사찰의 법당 등에 설치하는 단(壇)으로 불교의 우주관인 수미산을 상징나무나 금석 또는 돌로 수미산 형태의 단을 만들고 그 위에 불상을 안치한 대좌를 말함) 위에 앉은 세 보살과 각각의 인물들이 질서 정연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배치한 것으로 수준 높은 기량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다.
이 삼장보살도의 도상은 1661년에 간행된 천지명양수륙재의범음산보집이라는 경전에 근거한 것으로, 천장보살이 중생들을 구제하는 부처인 약사여래처럼 약호(약병)를 들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약호를 든 천장보살의 모습은 같은 시기 다른 지역 불화에서는 좀처럼 확인되지 않고 경상북도 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그려져 18세기 삼장보살도의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인 가치가 크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김천 직지사 괘불도는 1803년(순조 3년)에 제작된 괘불로, 현재까지 알려진 19세기 괘불 중 시기가 가장 빠르고 규모도 가장 크다. 머리에 보관을 쓴 보살형 본존이 양손으로 연꽃을 받쳐 들고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 있는 독존 형식의 괘불도로 괘불 하단에 쓰인 화기를 통해 직지사를 중심으로 경북 권역에서 활동한 제한을 비롯해 위전, 탄잠, 부첨, 신화 등 총 13명의 화승이 제작에 참여했다. 괘불도는 야외에서 거행되는 영산재, 천도재 등 대규모 불교 의식에 사용하기 위해 제작된 불화다.
도은선생시집 권1~2은 고려 말 문인 도은 이숭인(1347~1392)의 문집 5권 가운데 권1~2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1406년(태종 6년) 태종은 이숭인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문충’이라는 시호를 내린 후 그의 문집을 간행하라고 명을 내렸다. 이에 변계량(1369∼1430)이 편집하고 권근(1352∼1409, 고려 말 조선 초 문신)이 서문을 지어 간행한 것이 ‘도은선생시집’이다.
권근이 서문을 쓴 연도가 1406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조선 개국 이래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가 주조된 1403년에서 오래되지 않은 시기에 인출된 것으로 보이고, 계미자본 인출 시 주로 주석의 글자로 사용된 계미자 중자(中字)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책의 맨 앞은 없어져 권근이 쓴 서문의 말미 4행만 남아있고, 본문 역시 주석 없이 원문만 있는 권1~2만 수록돼 있어 완전한 모습을 갖추지는 못했다. 현존본이 극히 적고 조선 개국 이래 가장 먼저 인출된 계미자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가운데 고려와 조선 전환기의 금속활자 인쇄술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해 연구하고 보존할 가치가 충분한 자료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국보로 승격 예고한 부여 왕흥사지 출토 사리기와 보물로 지정 예고한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등 총 4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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