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성장은 우리 시대의 화두다. 첨단산업도 혁신이 필요하지만 건설산업과 같은 전통산업은 그 필요성이 더 크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건설투자 비중이 15%를 넘고, 200만명이 넘게 종사하고 있는 우리 건설산업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결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친다.
글로벌 컨설팅기관들은 건설산업 같은 거대 전통산업을 혁신하게 되면 새롭게 얻을 수 있는 부가가치가 엄청나게 크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맥킨지에 따르면 글로벌 건설시장의 규모는 약 10조 달러다. 그런데 건설산업의 지난 20년간 연평균 생산성 증가율은 1%에 불과했다. 반면에 세계경제의 생산성은 2.8%, 제조업은 3.6%나 증가했다. 만약에 건설산업의 생산성 증가율이 세계경제 수준만큼만 된다면 연간 1조6000만 달러의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연간 1조6000만 달러라는 수치는 전 세계 인프라 소요액의 절반에 해당하고 글로벌 GDP의 2%에 달한다. 맥킨지는 규제개혁, 정부조달제도 혁신, 현장실행 개선, 새로운 디지털 기술의 활용, 인력 양성 등을 통해서 글로벌 건설산업의 생산성을 48∼60% 높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차원의 건설산업 혁신전략도 많다. 영국은 2013년에 발표한 '건설 2025'를 통해 총생애주기비용을 33% 줄이고, 공사기간은 50% 단축하며, 온실가스 배출을 50% 줄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10년부터 해마다 2∼3%씩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건설생산성 로드맵을 실천하고 있다. 그 방안으로는 현장시공을 줄이고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을 활성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도 아이콘스트럭션(i-Construction)이란 이름으로 2025년까지 정보통신기술(ICT)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건설현장의 생산성을 20% 높이겠다는 혁신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글로벌 건설업체들도 오래된 대형 종합건설업체건 새로 창업한 스타트업이건 가릴 것 없이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에게 탁월한 글로벌 건설업체의 대표 격으로 각인되어 있는 벡텔만 해도 디지털 기술의 적극적인 활용 등 내부 프로세스 혁신을 통해 2020년까지 사업비 20% 절감, 공사기간 30% 단축을 목표로 하는 '프로젝트2020'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건설스타트업 가운데 2015년 창립 이후 2년 만에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카테라는 설계-제조-현장조립 및 시공에 이르는 가치사슬의 수직적 통합을 통해 건설산업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이 같은 건설생산방식의 혁신을 통해 카테라는 공사비와 공사기간을 각각 50%씩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개별 건설업체 차원, 정부 차원, 글로벌 차원에서 광범위하게 건설산업 혁신이 추진되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산업 혁신의 본질이나 가치는 무엇일까? 대부분 더 싸게, 더 빨리, 더 나은 품질의 환경친화적인 시설물을 공급하겠다는 목표와 비전을 제시했다. 우리는 어떤가?
만약 우리나라의 대형 건설업체나 스타트업이 혁신을 통해 미국의 벡텔이나 카테라처럼 공사비를 절감하고, 공사기간을 단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면 아마도 건설업계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할 것 같다. 오랫동안 건설업계는 주택업계만 제외하고, 저수익과 적자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적정공사비 확보가 다른 무엇보다 더 큰 숙원과제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처럼 공장제작 및 조립방식의 확대를 통해 현장투입 인력을 줄이겠다고 하면 일자리 창출에 역행한다는 지탄도 받게 될 것이다. 부실공사 방지와 안전 확보가 중차대한 국가적·산업적 과제이기 때문에 싸게, 빨리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인식도 널리 공유되어 있다. 게다가 건설산업의 산업적 이미지가 나쁘다 보니 불공정 관행의 개선이 중요하다는 인식도 크다.
이런 사정이다 보니 '혁신'이란 이름이 붙은 우리 정부의 건설정책도 정작 그 내용은 외국에서 말하는 혁신의 본질이나 가치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편에서는 스마트 건설기술의 도입과 활용을 주장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부실업체 퇴출이나 하도급 구조 및 불공정 관행 개선을 혁신방안으로 함께 버무려 놓고 있다.
만약 건설산업 혁신의 본질이나 가치는 도외시한 채 적폐 청산에만 치중한다면, 우리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갈수록 하락하게 될 것이다. 적폐 청산과 혁신은 투트랙으로 달리 접근했으면 한다. 건설산업 혁신의 본질과 가치를 살릴 수 있는 정책이 앞으로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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