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당탕탕’, ‘휘잉위잉’ 일부러 요란하게 화제를 만들어 물건을 더 파는 걸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한다. 정치에도 있다.
1987년 12월 첫 대통령 직접선거 당시 ‘광주학살의 원흉’으로 불린 전두환 대통령의 후계자이자 친구인 노태우 민정당 후보는 광주 유세에서 노이즈 마케팅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광주시민들의 거센 항의를 불러와 이를 이겨 내는 모습을 연출해, 비호남권 표심을 결집시키는 큰 그림을 그렸다. 치밀한 전략과 꼼꼼한 전술, 디테일을 선보였다. 유세 현장에 화염병과 돌이 날아올 줄 미리 알았다. 경호원들은 방송에 잘 나오는 투명방패까지 준비했다. 노 후보는 민주주의, 광주시민을 애타게 외치며 애국가를 부르자고 했다. 화합하자고 했다. 노태우의 이런 노이즈 마케팅에 김대중의 호남권은 고립됐다. 대구경북(TK)을 기반으로 한 노 후보 지지세는 더욱 똘똘 뭉쳤다. 다른 경쟁자인 김영삼의 부산경남(PK), 김종필의 충청권에 비해 유권자수가 가장 많은 TK지역에서 몰표를 받아 결국 당선됐다.

[1987년 11월 29일, 13대 대선 민정당 노태우 후보 광주 유세 모습. 사진=MBC뉴스 캡처]
사실 이회창 후보가 갑자기 광주를 찾는다고 하자 당시 김대중 후보의 국민회의는 아연 긴장했다. 87년 노태우의 ‘노이즈 마케팅’의 악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지역감정을 촉발시키는 자작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할 정도였다. 그러나 李후보의 광주방문은 조용히 끝났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18 망언 관련자(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징계 없이 5·18 기념식에 참가한다고 해 정치권에 ‘노이즈’가 인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눈 마주치기, 말, 악수 ‘3금(禁) 지침을 내렸고,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황 대표를 ’사이코패스‘라고 해 노이즈는 증폭 중이다.
도 중에 가장 최고의 도는 그냥 도(둬), 냅도다. 87년 노태우 당선, 97년 김대중 당선은 광주시민들이 냅도를 했느냐 안했느냐에서 갈린 측면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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