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꼰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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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미 기자
입력 2019-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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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꼰대'는 한국의 뿌리깊은 서열문화에 대한 냉소이자 변화의 신호"

다음 중 몇 가지에 해당하는지 따져보시라.

①일에 대한 당신의 헌신과 노력을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은가? 알려주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 한가? 
②인생 선배로서 후배의 패션 감각이나 연애에 자발적으로 조언을 하는가?
③커피 심부름을 하지 않는 후배를 보면 "요즘 애들은..." 이라며 혀를 쯧쯧 차는가?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최신호에서 한국의 '꼰대'에 관해 조명했다. 그리고 '꼰대'라는 말에 투영된 한국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봤다. 일단 위의 세 가지 물음에 해당된다면 당신은 '꼰대'일 가능성이 농후하단다.

"꼰대는 주로 나이 든 사람, 주로 남성을 가리킨다. 아랫사람이 무조건 '네네' 하길 바란다. 꼰대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지적하는 데 선수지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일은 없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에 이를 갈고 앙갚음한다. 꼰대라는 말은 자기애가 넘치는 회사의 상사에서 고압적인 아저씨, 부패한 정치인에까지 폭넓게 적용된다." 이코노미스트가 본 꼰대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젊은이들이 쓰는 꼰대라는 말에는 윗사람의 과도한 자기중심주의를 비꼬는 냉소가 담겨있다고 짚었다. 아랫사람으로부터의 공경은 나이가 듦에 따라 자동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얻어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젊은이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것.

이런 냉소의 바탕에는 나이, 성별, 연차에 따라 순서를 매기는 한국의 '악명 높은' 위계질서가 있다고 매체는 봤다.

이코노미스트가 예로 든 한국의 서열 문화는 이렇다. "한국인은 호칭에 엄청 예민해서 직장에서 상사를 잘못 부르기라도 했다간 크게 혼나기 십상이다. 상사가 원하면 회식이나 주말 산행을 거절하기 어렵다.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엔 여성이 온종일 요리와 청소를 도맡는다. 남성은 좀처럼 돕지 않지만 여전히 당연한 것으로 통한다." 

그러나 '꼰대'라는 말은 사회의 변화를 신호한다는 게 매체의 분석이다. 단단한 위계질서를 깨려는 공개적인 저항은 아직 드물지만, 권위에 대한 의구심과 도전이 권위를 내세운 윗사람을 조롱하는 '꼰대'라는 말에 반영됐다는 것. 이런 류의 변화는 아내가 남편과 육아와 집안일을 나눠 맡고, 아르바이트생이 사장의 무급 추가근무 요구를 거절하는 사례 등으로 구체화한다.

변화의 배경 중 하나는 젊은층의 교육 수준이 높아졌다는 데 있다고 매체는 봤다. 아랫사람이 더 이상 지식과 지혜를 얻는 데 윗사람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서 권위에 대한 도전이 가능해졌다. 동시에 젊은이들이 느끼는 불안이 커졌다는 점도 지적됐다.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교육이 더 이상 사회적 지위와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불안 속에서 엄격한 위계질서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격동의 한국 정치에서 변화의 배경을 찾기도 했다. 첫째는 1980년대 말 민주주의 정부 수립 후 평등권을 포함한 보편적 권리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 둘째는 세월호 사건 후 권위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이 초래하는 위험을 깨닫게 됐다는 것. 희생자 대부분이 선내에 머물라는 선장의 지시를 따랐다가 참변을 당했으며, 국민의 분노는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매체는 한국의 뿌리깊은 권위주의 서열 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지금은 윗사람의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이 막상 윗사람이 되는 날이 오면 '요즘 애들은 공경을 모른다'며 한탄할지 모른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꼰대'라는 조롱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편 꼰대라는 말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다. 옛날 어른이 사용하던 '곰방대'에서 주름이 많은 번데기의 방언 '꼰데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이코노미스트는 여기에 "으스대다, 생색내다"라는 의미의 영어 'condescend(칸디센드)'를 하나 더 추가해 눈길을 끌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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