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초 어머니를 떠나보냈다. 택시 속에서 전화기 너머 동생의 울 것 같은 목소리를 들었을 때 확 정신이 들었다. “아 엄마가...” 택시의 방향을 돌려 달려갔지만 어머니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어머니의 손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무서워서 소리내어 울었다. 냉동고에서 꺼내진 어머니가 관에 들어갈 때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입관식을 숨죽여 지켜보았다.
장례 절차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버지 때보다 체계적이라고 해야 할까. 문상객을 맞았다. 주말에다 폭염 때 어려운 걸음을 해준 그들에게 머리숙여 인사했다. 삼일째 되던 날 화장장으로 향했다. 관이 전기 화로 속으로 내려갔다. ‘소각중' ‘소각완료' ‘냉각중' 문자등이 차례로 켜졌다. 어머니는 유골함에 넣어져 우리에게 다시 왔다. 살거죽만 남았던 탓인지 어머니의 뼛가루는 정말 한줌이었다. 입자가 고운 뿌연 분말에는 질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이 이토록 가볍구나 싶어 한숨이 나왔다. 어머니는 26년 떨어졌던 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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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선생이 <연필로 쓰기>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여러 죽음을 조문하면서도 나는 죽음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다. 죽음은 경험되지 않고 전수되지 않는다.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은 죽은 자들의 죽음에 개입할 수 없고, 죽은 자들은 죽지 않은 자들에게 죽음을 설명해 줄 수 없다.” 생각해보니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일주일 전 죽음에 대한 강의를 난생 처음 들었다. 일부러 연차를 내고 간 이 강의에서 임사체험담을 접했다. 심장박동이 정지되었다가 심폐소생술 등으로 다시 살아난 사람이 의식이 없었던 때의 상황을 이렇게 증언했다를 의사가 전했다.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 긍정 감정, 체외이탈, 터널 통과, 밝은 빛과의 교신, 세상을 떠난 가족과 친지 만남, 자신의 생을 회고했다는 등의 근사체험 요소는 믿을 수도 믿지 않기도 난감했다.
죽음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시작되어 어머니를 보내고 나서 강화된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였다. 죽음이 끔찍한 공포나 고통이 아니라 삶의 일부나 마지막 성장이 되려면 죽어갈 때의 모습이 중요하고 그것은 어떻게 살 것인가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어머니가 5년 가까이 요양시설에서 지낼 때 사실 삶의 질에 절망했다. 어머니를 비롯해 거기 있는 어르신들은 대부분 침대에 누워 요양보호사에게 모든 것을 맡긴 채 겨우 숨이 붙어 있었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18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739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4.8%에 달한다. 2025년 1000만명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2008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해 노인 돌봄을 공공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도입에 20년이 걸린 탓인지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라는 긴 이름의 법도 발효된 지 1년 반이 넘었다. 지난 6월에는 정부가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19~2023)’을 내놓아 ‘국민의 존엄하고 편안한 생애 말기 보장’에 한발 더 내디뎠다.
여전히 갈 길은 멀다. 2018년 사망자의 76.2%가 집이 아닌 곳에서 생을 마쳤다. 상당수가 병원 중환자실이나 요양시설에서 연명치료 끝에 홀로 죽음을 맞은 것이다. 간병살인이나 동반자살 같은 비극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인식이 빈곤하다.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관련해 몇가지 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사전연명치료중단의향서를 써놓고 아이들과 죽음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엔딩노트나 인생노트 같은 내 삶의 기록을 쓰고 연말에 유서도 써보자. 생전에 좋아하는 사람들과 유쾌한 장례식은 더 검토해보되, 화장장 가는 길에 틀 영상은 만들자. 종국에는 다 내놓고 내려놓되 자기결정권이라는 마지막 권력에 대한 선택은 온전히 내가 행사하자. 죽음, 정확히 ‘죽어감’은 삶의 일부다. 잘 죽는다는 건 잘 산다는 말과 같다.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은 동의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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