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이 움직이니 로봇팔이 따라 움직였다. 얇고 길다란 로봇팔에 부착된 집게가 장기를 집는다. 작고 날카로운 가위는 내가 가위질 하는 시늉을 하자 집게가 들어 올린 부위를 자른다. 그런데 큰일 났다. 출혈이다. (진짜 의사라면) 난 큰 사고를 친 셈인데…다행이다. 가상 로봇수술 체험이다.”
로봇수술은 로봇팔이 의사의 생각대로 움직이며 수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봇수술에서 의사는 직접 가위를 잡지 않는다. 하지만 로봇팔에 달린 가위는 의사가 직접 가위질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가위질을 한다. 더 깊숙한 부위를 약간의 손떨림도 없도록, 의사의 손이 ‘신의 손’이 되도록 보조한다.
기자는 수술로봇이 의사의 손처럼 움직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31일 오후 서울 마포구 글로벌 의료로봇 기업 인튜이티브서지컬코리아(이하 인튜이티브)를 찾아 수술로봇 ‘다빈치’를 직접 체험해봤다.
다빈치 교육장에 들어서니 수술대와 로봇팔이 보였다. 그런데 의사가 앉아 있을 위치는 떨어져 있었다. 로봇수술에서 의사는 수술대에서 1미터(m)가량 떨어진 콘솔(조종관) 앞에 앉아 3차원 영상을 보면서 로봇팔에 달린 기구를 조종한다.
이날 기자는 다빈치의 로봇수술기 중 한 개 또는 4~5개의 구멍을 내 다양한 수술이 가능한 Xi 모델에 도전했다.
로봇팔을 움직이기 위해 콘솔 앞에 앉아 집게처럼 생긴 기기에 엄지와 중지를 끼우고, 검지는 홀드 버튼 위에 올렸다. 엄지와 중지를 좁히거나 벌리면 로봇팔의 집게도 똑같이 움직였다. 손목을 안팎으로 돌리거나 꺾는 움직임도 부드러웠다. 화면의 입체감은 생생했다. 수술대 위에 있는 ‘미션도구’는 손바닥보다 작았지만, 콘솔에선 10배까지 확대 가능해 조종자가 보기 편한 화면을 선택할 수 있었다.
화면을 보면서 로봇팔이 직접 링을 집어 고깔에 끼우는 미션을 수행했다. 한 번의 실패 없이 고깔에 모든 링을 끼우는 데 성공했다. 관계자는 Xi는 기존 모델에 비해 로봇팔을 가늘게 해 로봇팔끼리 부딪치는 단점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수술 가상 시뮬레이터를 통해 가상현실에서 바늘을 꿰매는 봉합 수술과 전립선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봤다.
우선 봉합 수술에서 바늘을 꿰매는 작업은 고리를 고깔에 끼우는 미션보다 어려웠지만, 양쪽 집게를 활용해 3번 만에 성공했다.
마지막 미션은 남성의 전립선을 떼어내는 작업인데, 처음 몇 번은 잘못 잘라 출혈이 생겨 깜짝 놀랐다. 침착하게 마음을 가다듬은 후 다시 시도해 봤다. 비록 몇 번의 출혈을 봤지만, 일반인인 기자가 큰 출혈 없이 전립선 일부를 제거할 수 있었다.
최근 로봇 수술은 의료계에서 각광받는 분야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로봇수술을 하게 되면 수술 합병증이 줄고, 회복 속도도 빠른 장점이 있다. 또한 다른 의료장비에 비해 의사의 적응 기간이 짧으며 복잡한 수술에서도 활용도가 높아 시장이 급성장 중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BCC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수술보조로봇 시장은 2017년 5조8700억원에서 연평균 13.2% 증가해 2021년 9조64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IBM 계열 연구소 윈터그린리서치 역시 2022년 15조원까지 팽창할 것으로 예측했다.
기자가 방문한 인튜이티브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곳으로, 2000년 세계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거친 1세대 ‘다빈치’를 선보이며 의료로봇 시장의 포문을 열었다. 다빈치는 세계 시장점유율 60% 이상을 차지하며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국내 병원들도 2005년 로봇 수술을 처음 시작한 이후 대부분 다빈치를 사용하고 있다.
인튜이티브 관계자는 “로봇수술은 의사의 수술이 더욱 정교하고 섬세해 지도록 돕는 것”이라며 “(우리는) 지난 20여년간 로봇수술에 대해 풍부한 임상경험을 쌓아왔다. 이는 최신 4세대 로봇수술기 시스템인 다빈치 Xi, X(보급형), SP에 집약돼 있다”고 말했다.
현재 다빈치는 S→SI→Xi 등 모델을 거쳐 지난해엔 환자의 배꼽 부위에 2.8센티미터(㎝) 구멍 하나만 뚫어 좁고 깊은 골반 속 질환을 치료하는 데 특화된 ‘SP’ 모델도 나왔다.
인튜이티브에 따르면 로봇수술은 전립선 분야를 비롯해 산부인과 시술, 대장암, 직장암, 위암, 갑상선암 등 분야에서 쓰인다. 다빈치 로봇수술기는 전 세계 5270여 대, 국내는 59개 병원에서 87대를 운영한다. 지난해까지 전 세계 수술건수는 600만 건이 넘었으며, 국내에선 10만 건 이상 수술을 진행했다.
2세대 다빈치부터 4세대까지 10년 이상 로봇수술을 경험한 민병소 세브란스병원 로봇내시경수술센터 소장은 “수술로봇은 결국엔 외과의사가 조종해서 수술해야 한다. 어떤 기구를 숙련하는 데 있어 로봇수술은 복강경 등에 비해 시간이 짧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또 장시간 수술의 경우 앉아서 수술할 수 있다는 점은 (의사의) 피로도를 낮춰줘 수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다만 에너지 등 기술이 적용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민 소장은 “전통적으론 메스(칼)를 사용했지만, 최근엔 전기에너지를 열에너지로 바꾼 전기소작기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복강경 수술에선 에너지 디바이스 기구가 나오고 있는데, 이 부분은 앞으로 (로봇수술에서) 보완돼야 할 부분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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