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총리설을 두고 정가에서 하도 말들이 많아 국무총리를 지냈던 분에게 전화해서 의견을 물어보니 이 같은 대답이 나왔다. 요즘처럼 진영논리가 극성을 부리는 상황에서는 자기 이름이 드러나는 것에 부담을 크게 느낀다는 이 관계자는 “총리는 사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사람입니다. 여론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해줄 수 있는 위치에 있지요. 말이 경제총리이지 경제부총리가 따로 있지 않습니까”라는 말도 덧붙였다.
전(前) 총리의 이 같은 발언에는 청와대가 진보 시민단체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느냐는 깊은 회의감이 감춰져 있었다. 그리고 총리는 어디까지나 총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뜻도 있다.
시민단체 등이 김진표를 반대하는 데는 김진표 의원이 노무현·문재인 정권에서 활동한 것은 맞지만 친기업적인 정책을 오랜 기간 주장해 왔다는 데 있다. 김진표가 총리가 되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사실상 궤도수정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사안이 복잡하고 뭔가 꼬인 것 같지만 이슈는 간단하다.
청와대가 공식 발표한 것은 아니지만 처음 김진표 총리 기용설이 나왔을 때 경제총리라는 개념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전반기의 경제성적이 신통치가 않아 인기하락의 주요 요인이 되자, 앞으로는 경제를 적극 챙기겠다는 뜻으로 김진표를 내세웠고 국민들도 호의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대목에서 시민단체 등 진보세력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앞으로 경제를 챙기겠다는 말을 바로 “그건 친기업적 정책을 내놓겠다는 뜻”이라고 단순화시킨 것은 아닌지.
물론 청와대가 김진표를 총리로 물밑작업한 데는 청문회와 국회 투표 등을 쉽게 넘기자는 뜻도 숨어 있었다. 청와대와 지근거리에 있는 고위 관계자는 “왜 이낙연 총리가 그리 오래갔느냐. 청문회가 쉽지 않아서 그렇다. 총리는 장관과는 달리 국회 재적 의원의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의 과반수 찬성이 필요하다. 지금 이런 기준에 맞출 총리감을 찾기 쉽지 않다. 시민단체가 김진표 의원을 반대할 논거에도 근거가 아주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때문에 김진표 의원은 그대로 총리에 지명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가 김진표를 총리후보로 생각한 데는 경제를 챙기겠다는 메시지 전달도 중요하지만 격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국회 상황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김진표 의원은 총리에 정식 지명되기도 전에 며칠 사이 극과 극을 오가는 혼선이 이어졌다.
진보언론 중 하나가 청와대가 김진표 카드를 접었다고 보도하자마자 곧바로 추미애 의원만 법무장관에 기용되고 김현미 현 국토부장관의 총리 기용설이 튀어나왔다. 당사자인 김진표 의원의 반발이 뒤늦은 수순처럼 이어졌고 다시 한번 김진표 총리 강행설이 나온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국 법무장관에 이어 대통령의 인사권이 좌우 모든 진영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래서야 나라를 이끌어갈 수 없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김진표를 아직 거론하지는 않았다.
소상공인연합회, 한국외식업중앙회, 한국소프트웨어기술인협회 등이 잇따라 김진표 총리 기용에 찬성 성명을 내는 것을 보면 시장에서 김진표 의원에 기대를 거는 흐름도 만만치는 않다. 시민단체 등이 김진표 의원을 관료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반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혹여 ‘경제총리’라는 말이 그대로 ‘반개혁적’이라는 개념과 동일시되는 기이한 이미지가 이대로 굳어지면 이 또한 국가의 앞날을 생각할 때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의 최종 선택이 주목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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