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투자증권이 지난해 투자지표 가운데 핵심인 매출·손익까지 뒤바꿔 잘못 공시하는 등 거의 해마다 사업보고서 오류를 정정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회사는 단순 실수라는 입장이지만, 리딩 증권사에서 이 같은 일이 잦다 보니 증권업에 대한 신뢰도마저 추락하고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회사의 부실한 회계처리에 대한 자구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보면 한국투자증권은 애초 3월 20일 내놨던 2019년 사업보고서를 두 달이나 지난 이달 20일 정정했다. 10대 증권사 가운데 같은 해 사업보고서를 고친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세 곳밖에 없었다. 삼성증권과 신한금융투자는 사업보고서를 내놓은 당일(3월 20일) 바로 보고서를 정정해 혼란을 줄였다.
한국투자증권은 한꺼번에 출자자 수와 임원 현황, 2017~2018년 실적을 고쳤다. 출자자 수는 1만7174명에서 1만4517명으로 바뀌었다. 이강행 이사와 호바트 리 엡스타인 사외이사, 정영록 사외이사, 김태원 사외이사, 김정기 사외이사, 조영태 사외이사, 윤대희 사외이사는 미등기임원에서 등기임원으로 변경됐다.
주가를 좌우하는 매출·손익도 수정 폭이 컸다. 2018년 매출은 애초 5조9668억원으로 기재했다가 그보다 31% 이상 많은 7조8388억원으로 고쳤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처음 밝힌 것보다 각각 11%와 7%가량 늘어난 6706억원과 5035억원으로 수정됐다.
2017년 매출·손익도 마찬가지다. 매출은 4조8996억원에서 22%가량 늘어난 5조9758억원으로 바로잡혔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당초 적었던 것에 비해 각각 101%, 94%가량 많은 6035억원, 4723억원으로 변경됐다.
한국투자증권에 비해 삼성증권이나 신한금융투자는 단순실수를 바로잡은 사례에 해당됐다. 삼성증권은 임원과 직원 보수 단위를 잘못 적어 '백만원'을 '천원'으로 고쳤다. 신한금융투자는 배당금 예정사항을 2000억원으로 잘못 적었다가 73억9100만원으로 바꾸었다.
한국투자증권이 손익 부분에서 사업보고서를 고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8년 5월 15일 분기보고서를 낼 때도 약 석 달이 다 돼서야 영업부문의 순금융자산평가 및 처분손익과 기타 액수를 정정하기도 했다.
당시 분기보고서에서 기업금융 순금융자산평가 및 처분손익은 석 달 만에 135억원에서 266억원으로 97% 늘어났고, 기타 액수는 728억원에서 597억원으로 18% 줄었다. 운용업 순금융자산평가 및 처분손익은 -1218만원에서 -61만원으로 50%, 기타 액수는 3억850만원에서 3억24만원으로 2% 각각 줄었다.
회사는 최근 10년 사이 10차례 진행되는 사업보고서 제출 기한 동안 5차례 사업보고서를 정정했다. 한국투자증권은 2014·2015년 사업보고서에 임원보수 관련 내역을 제대로 기재하지 않아 수정했고, 2016년 사업보고서에는 이해관계자 거래내용을 누락했다. 2017년 사업보고서는 자본금 변동 연도와 감사위원회 활동, 보호예수 현황을 바로잡았다.
한국투자증권은 2019년 7월 기업공개(IPO)를 주관하면서 증권신고서를 부실하게 적었다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추가적인 정보 제출 요구를 받기도 했다. 산업용 로봇을 만드는 에스피시스템스 상장을 주관하면서 최근 실적을 뺀 채 이전 실적만으로 시가총액을 산정했다가 문제를 일으켰다.
한국투자증권이 기업공시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한 자구책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도 공시 번복이 잦은 상장사를 불성실 공시법인으로 지정하고 있다. 하지만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워 상습적으로 공시를 위반하는 상장사를 따로 살펴보는 실정이다.
강명현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공시는 주가 움직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고의성 여부와 관계없이 반복되는 실수에 대해 기업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실적과 같은 주요 재무사항은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다.
한국투자증권 관계자는 "기재 오류에 따른 것"이라고만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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