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갈등, 속 시원한 해결책 왜 안나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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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아시아리스크모니터(주) 대표
입력 2020-06-07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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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니엘]

[노다니엘의 일본 풍경화] 충돌하는 가치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기본조약 체결로부터 55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두 나라의 관계는 아직도 정상이 아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에서의 분위기를 요약한다면 일본의 집권자민당이 꼴통보수여서 정의로운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는 양보를 해도 한국은 계속 새로운 요구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이 사안을 특정한 정권의 차원을 넘어 큰 시각에서 조감해 볼 필요가 있다.

인터넷으로 아프리카 부족마을에서의 사건조차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이 시대에 두 나라 1억 7천만의 교육을 잘 받은 시민들은 도대체 왜 이렇게 동떨어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일본학을 전공하고 삼십년 이상 일본을 관찰해 온 한국인인 내 마음속에 있는 대답이자 우려는 두 나라 국민의 가치관이 매우 다르고, 이 사실을 서로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역사에 대한 인식과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으로 나누어 풀어보고자 한다.
 

 



상이한 역사에 대한 인식

한국인은 정치에 관심이 많다. 지인들이 모여서 정치이야기를 하는 풍경은 한국에서 흔히 보인다. 그 이유는 역사를 통하여 정치의 변혁에 따라 삶이 바뀌는 경험이 많아서일 것이다. 한반도에는 대륙으로부터 수백번의 침략이 있었고, 일제에 의한 강점이 있었으며, 그 반도 위에서 세계적인 냉전이 전쟁으로 발발하기도 하였다. 한편, 일본열도에 외국인이 대규모로 침범한 것은 미국뿐이었다. 그 반면에 일본군은 한반도와 중국을 침범하고 아시아에서 대규모전쟁을 벌이기도 하였다.

역사 속의 변혁이 개인의 안위를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오랜 경험 속에서 한반도의 사람들은 역사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는 의식이 DNA로서 자리잡았다고 본다. 한반도에서 반란, 정변, 쿠데타 등이 많았던 것은 이 DNA의 작용이라고 본다. 역사가 개인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면, 개인이 탁월성을 추구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인이 역사변혁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온 것에 비하여, 일본인에게 역사란 주어지는 것이다. 일본인은 정치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일본의 정치학자들이 모여도 사적인 자리에서는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정치는 우주에서 기능하는 많은 객체의 하나이지, 자신이 주체가 되어 바꿀 수 있는 것이라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민중이 일어나 정권을 바꾼 사례는 일본역사에 없다. 전후를 놓고 보아도, 일본은 1955년에 결성된 자민당이 몇년을 제외하고는 집권을 유지해 오고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1948년에 제1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현재 제6공화국에 이르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헌법이 바뀌는 변혁의 원동력은 민중과 정치권력의 관계였다.

개인의 집합인 민중이 정치질서를 바꾸는 경험 속에서 한국인은 정치를 ‘정의’를 추구하는 당위의 개념에서 접근한다. 옳고 그름을 개인들이 토론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질서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에서, 정치의 요체는 당위(當爲)이다. 그 반면에 일본인에게 있어 정치는 저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고 주어지는 것이다. 일본인은 정치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이다. 따라서 정치는 자신들의 욕망과 이상을 추구하는 수단이 아니라, 보편적인 기능을 가진 도구이다. 선거로 국회의원을 뽑기는 하지만, 개인들이 뜻을 모아 정권을 바꾼다는 것은 일본의 역사 속에서 해본 일이 없는 것이다.


법치주의 vs 윤치주의

중고등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한국인에게는 ‘법치주의’라는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법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질서가 있고 세상이 합법적으로 돌아간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일본과 비교해 본다면, 한국사회는 법조문이 세상을 다스리는 법치주의만이 아니라, 공통의 도덕률이나 윤리가 세상을 다스리는 ‘윤치주의’의 측면이 강하다. 사회에서 주목을 받는 사건들이 검찰이나 법원에서 다루어지는 일이 소상하게 뉴스로 보도가 되고, 나아가서 검찰의 구형량이나 법원의 판결에 관하여 시민들의 반응이 소개되는 것은 일본에서 보기 힘들다.

법의 기능은 그 사회에서 인정된 전범으로서 질서를 유지하는 것(social ordering)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법전에 인쇄된 조문뿐 아니라, 사회적인 통념이나 윤리가 가미된 판결을 원한다. 이것이 소위 ‘국민의 법감정’이라는 것인데, 이러한 개념이나 용어는 일본에 존재하지 않는다. ‘괘씸죄’라는 말은 번역조차 하기 힘들다. 즉, 한국에서의 정의 구현에는 social ordering에 private ordering이 가미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역사문제의 충돌

위에서 말한 개인과 역사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 정의를 구현하는 모양에서의 한·일 간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것이 소위 ‘역사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글에서 어느 쪽이 옳다거나 하는 판단을 감히 내릴 의도가 없다.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위에서 설명한 요인으로 인하여, 두 나라 사이의 역사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매우 어려우며, 어쩌면 한국사회가 바라는 대로 속 시원히 해결되는 것이 영원히 힘들지 모른다는 우려를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일관계를 어렵게 하고 있는 역사문제, 즉 위안부피해자문제와 징용공문제에 있어 일본의 입장은 1965년의 기본조약과 부속협정으로써 해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하여, 한국의 입장은 일본의 역사적 범죄행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한 보상과 사죄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 특히 피해당사자나 가족 또는 지원단체 입장에서 보면 괘씸하고 기가 막히는 일본의 입장은 그 핵심이 법치주의이다. 즉, 태평양전쟁의 종결과정에서 맺은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과 그 레짐 속에서 한·일 두 정부가 맺은 1965년의 기본조약으로 역사나 영토문제가 다 해결되었다는 것이다. 당시에 한국을 대표하는 합법정부가 합의하였으며,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간단명료하고 편한 입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법의 보편성, 항상성이다. 억울하면 국제사회에 물어보자고 한다.

이에 반하여, 한국의 피해자측 입장은 법이 만능이 아니며 결함과 부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조약에 의하여 국가 사이의 청구권이 소멸했어도,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정의를 구현하기 원한다면, 법의 도구성을 맹신하지 말고,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윤리에 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은 법이라는 물건이 아니라 인간의 바람과 가치체계라는 것이다. 게다가 위안부문제는 인류의 규범에 어긋나는 것으로 한낱 조약에 따라 규율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나는 이 두개의 입장을 놓고 영원히 뻗어가는 철도의 평행선과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 일본사회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간단명료한 명제를 신처럼 떠받들고 있으며, 게다가 이 ‘법치주의’는 국제사회에서 편리하고 유리한 입장을 주고 있다. 한편, 일본이 정의를 무시하고 국제법규범에 기대어 책임을 회피한다는 한국인의 반발심은 더 강해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서,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피해자중심주의’는 이미 하나의 독트린이 되었으며, 한국정부가 이 입장을 철회하거나, 피해자지원단체를 설득하여 단념시키는 일은 기대하기 힘들다.

해결의 시나리오?

그렇다면 이 난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없는가? 이론적으로는 세개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당사자들 사이의 해결이다. 여기서 당사자란 피해자 (및 지원단체)와 가해자 (일본정부, 기업)가 상의하고 타협하여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양측을 대표하는 인물이나 기구도 없고, 설혹 만들어도 전권을 가지고 협상할 능력이 현실적으로 없다.

두번째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는 두 나라 정권이 다시 논의하여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영원히 바꿀 수 없는’ 약속을 맺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두 나라의 정부는 끊임없이 대화해 왔으며, 위안부문제에 대해서는 협정을 맺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는 추후에 한국사회에 의하여 부정되었다.

특히, 현재의 문재인 정권과 아베 정권은 전후 역사상 정치이념적으로 가장 좌우로 멀어진 관계이다. 전후 역사상 한·일의 정권이 가장 근접했던 김대중-오부치 프레임이 다시 형성되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양국의 정권뿐 아니라 시민사회도 각자 변질하여 여행자는 증가하지만 시민들 사이의 동반자의식은 점차 엷어지고 있다. 특히, 한국의 국력이 신장함에 따라 한국인의 의식 속에서 일본은 점차 작아지고 멀어지고 있다고 본다. 한편, 일본인들 사이에서는 역사문제에 관하여 시비를 가리기 이전에 피곤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미국의 개입과 중재이다. 여기서 미국을 적시하는 것은 미국이 강대국이어서가 아니라 책임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에 가령(if)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1) 태평양전쟁을 종결하는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만약 한국정부가 참가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2) 소련과 중공이 부상하여 이에 대한 냉전구조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강요하여 한국과 일본정부가 무리하고 졸속으로 ‘정상화’조약을 맺지 않았다면, 오늘의 불행은 잉태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후국제질서를 만들고 주도하던 미국은 이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1억 7천만 시민들이 지혜와 힘을 모아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미국은 종이호랑이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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