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포토] 75년 전 日 히로시마에 무슨 일이? 25만 명 한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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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연 기자
입력 2020-08-06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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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P]


2020년 8월 6일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75주년이 되는 날이다. 

히로시마 원폭 사건은 태평양전쟁 당시 승기를 잡은 미국이 일본의 항복을 끌어내기 위해 일본 본토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사건을 말한다. 

지난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폴 티베츠 중령이 조종하는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호에서 투하된 최초 핵무기 '리틀 보이'가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폭발했다. 고도 9750m 상공에서 투하된 폭탄이 자동 폭발 고도에 도달하기까지는 단 57초가 걸렸다. 

폭발로 생긴 버섯구름이 18㎞ 상공까지 치솟았고, 폭발 지점을 중심으로 반경 1.6㎞ 이내 모든 것이 파괴됐다. 당시 히로시마에는 25만 5000명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폭발로 7만 명이 숨졌고 이후 방사능 피폭으로 이와 맞먹는 사람들이 고통 속에 사망했다. 

당시 폭발을 목격했던 시민들은 엄청나게 밝은 빛을 목격했고, 생존자들은 이 빛을 '순수한 흰색'이라고 묘사했다. 손으로 눈을 가리니 자신의 뼈가 보일 정도였다고 한다. 즉, 인간의 살은 어느 정도 빛을 투과시키는데 가시광선만 해도 자기 뼈가 보일 정도로 강력했다는 얘기다. 특히 직접 빛을 쳐다본 사람들은 눈이 멀었고 심지어 안구가 융해됐다. 폭심지 근처 온도는 열복사로 약 3000~4000도(태양 표면 온도가 6000도)였는데, 계단에 앉아있던 사람이 증발되기 직전 열선으로 인해 계단에 찍힌 검은 흔적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 보존돼있다. 

미국은 이로부터 3일 후인 9일 나가사키에 두 번째 원자폭탄을 투하했고, 또다시 3만 5000명에 달하는 희생자를 만들었다. 결국 10일 일본천왕은 연합군에 무조건 항복 의사를 전달했고, 5일 후 항복을 선언하며 태평양전쟁이 5년 만에 끝이 났다. 

한편, 6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추모식에 원폭 희생자 유가족과 마쓰이 카즈미 시장 등 관계자들이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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