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젊은 의사들, 실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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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전주대학교 명예교수
입력 2020-08-30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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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한다-

[이병훈 전주대 명예교수] 


의사증원과 공공의대 설립 문제를 둘러싸고, 코로나 바이러스-19 확산에 맞서 전국민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 중대한 시기에 의사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다. 전공의, 전임의, 개업의, 의과대학 교수들과 이들을 대표하는 대한의사협회는 의사수를 증원하고, 공공의과대학을 설립하고자 하는 정부가 자기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태도에 대하여 그것을 저지하고자 집단행동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들은 정부의 일방적이고 졸속적이고 소통하려고 하지 않는 관료적 행태에 반기를 들고, 지금이라도 정부가 이런 정책방향을 철회하면 바로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의사들을 달래기 위하여 수차 대화를 제의하여 만나기도 했으며, 협의는 계속하여 나가되 파업을 중단하고 업무에 복귀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지금은 정부의 업무복귀명령이 내려지고, 의협은 만에 하나라도 의사들이 법에 의하여 피해를 보는 사람이 발생하면 전면적인 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코로나-19 라는 미증유의 대재앙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독특한 상황 -이런 일은 지금 한국에서만 벌어지고 있다- 은 한국의 의료체계를 붕괴시키고, K-방역이라는 이름이 붙을 정도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던 우리의 우수한 방역체계가 어쩌면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정부와 의협 사이의 의견대립은 모두 상대방의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이 양자 사이에 합리적인 타협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국가권력을 행사하여 의사들을 강압할 수 있을 것이고, 의사들은 국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한다는 긴요한 의술을 무기로 -결국 국민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간접적으로 정부를 압박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문제 역시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하며, 결국은 국민이 개입하고 국민이 판단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는 것이다. 의사수를 늘린다거나 의사가 부족한 지방에 근무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일은 결국 입법에 의하여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기 때문에, 그것은 국회가 해야 할 일이며, 그 입법과정에 문제가 있으면 이익단체인 의협이 국회에 가서 문제를 제기하고 로비를 해야 할 일인데도, 의협은 먼저 정부에 시비를 걸고 있다. 그것도 이 위급한 시기에 의사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서.

앞에 말한 바와 같이 의사들이 불만을 가지고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불통·독선·불신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하지만, 그 핵심은 의사의 정원을 늘린다는 데 있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의사의 수가 부족하고, 특히 지방에는 더 부족하므로 지방에 근무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고, 그 대우도 보장해 주자는 것이고, 그리하여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해 나가자는 것이 정부의 구상인 것 같은데, 어떻게 양성하고 어떻게 대우해 주어야 하고 어떻게 의료의 공공성을 확대해 나갈 것인가는 앞으로 논의해 보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그렇게 되면 의사의 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며, 이 점에 대해서 대부분의 의사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반대의 명분은 정부의 불통·독선으로부터 실제로 의사수를 잘 계산해 보면 부족하지 않다는 것까지 다양하지만, 의사들의 본심은 좌우간 의사정원을 늘리지 말자는 것이다.

왜 의사수를 늘려서는 안되는가? 결국은 기득권자들이 자기들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다. 이런 일은 비단 의사뿐만 아니라 다른 직역에 있는, 소위 자격증을 가진 자들의 사회에서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비일비재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러한 일에 별 관심이 없다, 비난하거나 화가 나지도 않는다. 내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전공의·전임의 같은 젊은 의사들도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들도 사람이고 특정한 사회의 구성원이고 이기적인 인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뿐이겠지만, 아무래도 장래에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갈 젊은이들이 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없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오늘날의 지식정보사회에서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수요는 의료분야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지 증가하기 마련이다. 이미 확보한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진입을 막는 일은 이 사회의 발전과 공영을 가로막는 일이다. 의사가 많이 생긴다고 해서 기존의 의사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 짝이 없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같이 공부하고 협력해 나가는 것이 왜 피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아무래도 교육이 잘못되었거나 열린 사고를 하지 못하는 까닭인 것 같다. 노년에 들어선 사람들은 머리가 굳어져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젊은이들도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슬픈 일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젊은 의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의협 같은 단체에게 끌려가고 있는 것 같다. 개성이 발랄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교육을 받은 우리의 젊은 의사들이 이기적인 집단에게 맹목적으로 동조한다는 것이 대단히 실망스럽고 화나게 만든다.

모든 의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인도주의 실천 의사협의회’(우석균 공동대표)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반대하고 나섰다. 의사들이 빨리 환자 곁으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자세히 보도되지 않았지만, 아주 소수의 의대생들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반대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대생들은 의사고시도 보이콧 한다면서 선배들의 뒤를 따르고 있다.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이 발생하면 의대교수들도 파업에 동참할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잘 짜여진, 아주 견고한 집단이다. 의사들을 제외한 간호사들이나 간호조무사들은 의사들의 이런 행동을 절대로 좋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의료현실을 잘 아는 사람들로서, 의료계의 누적된 적폐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의사 수부터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전국 보건의료산업 노동조합 나순자 위원장).

지금 의사들 행동의 저변에는 돈, 밥그릇과 같은 이기심 이외의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 의사들은 갑자기 의사 수를 늘리면 의사의 질이 떨어진다고도 한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다. 사람의 질이나 수준은 도덕성이나 공공심이 갖추어진 다음에 따져볼 일이지, 이미 본분을 떠난 사람들에게 무슨 질이며 수준을 논할 필요가 있겠는가. 의사의 휴진 때문에 의사 있는 병원을 찾다가 죽은 사람이 생기고 있다. 정말 우리나라에는 의사 -그것도 의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가 더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예로부터 의업은 사람을 살린다는 의미에서 숭고한 직업으로 간주되어 왔다. 우리의 젊은 의사들에게 모두 슈바이쳐 박사나 이태석 신부 같은 의사가 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의사가 될 때 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다시 한번 음미해 보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조건 집단 이기주의 속에 매몰되지 말고 열린 자세로 자기 자신과 국가의 발전을 위하여 무엇이 바른길인가를 성찰해 주었으면 한다.

앞으로 정부와 의협간의 대화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원만하게 타결이 될지 아니면 파국으로 치달을지. 의협은 이미 정부가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지 않는 한, 9월 7일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할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공익을 수호하고 법집행자로서의 정부가 어떤 각오와 결단을 할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해 있다. 지도자의 현명한 판단이 요청되는 국면이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대화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결코 이익단체인 의협과만의 대화가 되어서는 안되고, 국민과 의료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예컨대 간호사 간호조무사 환자단체 시민사회 등, 광범한 국민과의 대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전에 보았던 것처럼, 밀실에서 타협하면서 의료수가만 올려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전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병 훈

(위 칼럼은 아주경제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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