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울주 아동학대 사망 사건, 자매 아동학대 사망 사건 2019년 인천 5세 의붓아들 학대 사망 사건, 2020 창년 아동학대 사건 그리고 정인이 사건에 이르기까지. 아동학대 문제가 많은 이를 공분하게 했고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으나 지금까지 마땅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고 있다.
배우 박하선(34)은 누구보다 아동학대 문제를 아프게 느꼈다. 그 역시 한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가 출산 후 복귀작으로 영화 '고백'을 선택한 것도 같은 이유다.
영화 '고백'(감독 서은영)은 7일간 국민 성금 천 원씩 1억 원을 요구하는 전대미문의 유괴사건이 일어난 날 사라진 아이, 그 아이를 학대한 부모에게 분노한 사회복지사, 사회복지사를 의심하는 경찰, 나타난 아이의 용기 있는 고백을 그린 작품이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만나 인터뷰를 나눈 박하선의 일문일답
출산 후 복귀작으로 영화 '고백'을 택했다
- 예산이 큰 영화가 아니라서 개봉까지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엎어질 뻔하기도 하고, 촬영까지 계속해서 밀리기도 하고…. 영화 '고백'을 계속해서 기다렸다.
그렇게 오래 기다린 이유는 무엇인가?
- 시나리오를 보고 큰 울림을 느꼈다. 마지막 엔딩신과 더불어 '고백'이라는 타이틀이 뜨며 마무리되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려지더라. 영화의 메시지에 큰 공감을 했고 큰 울림을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고백'을 찍으며 자존감을 회복했다. 출산 후 육아를 하며 자존감이 낮아졌는데, 감독님께서 '당신이 육아 경험이 있어 (촬영할 때) 더 좋은 것 같다'라고 말씀해주시더라. 눈물이 났다. 힘도 얻었고.
완성된 영화를 보고 나니 어땠나
- 개인적으로는 제 연기에 부족함이 느껴져서 아쉬웠다. 찍을 땐 시원하게 연기한 거 같은데(웃음). 굶다 연기해서 그랬는지 모든 걸 쏟아부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스크린으로 보니 (연기가) 부족하게 느껴지더라. 아쉬움은 남지만, 영화 자체가 가진 메시지와 큰 울림이 느껴졌다. 제 작품을 보고 운 건,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후 처음이다.
육아 경험이 캐릭터 접근에 도움을 주었나?
- 아무래도 아이를 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이를 쭉 보다가 일을 하게 된 거라서. 또 달라진 게 있다면 촬영 현장에서 임하는 자세다. 현장에서 트러블이 생기더라도 '저 사람도 누군가의 부모·자식이겠지' 하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누그러진다. 또 여자 스태프들도 저를 편안하게 대하는 거 같다. 아줌마가 돼서 그런 걸까? 모두 편안하게 생각하는 거 같다.
최근 '정인이 사건' 등 아동학대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나. 부모이기도 하고, '고백'을 찍은 배우로서도 사건을 보는 마음이 달랐을 거 같다
- '고백'을 2018년 여름에 찍었는데 아직도 달라진 게 없어 속상하다. 그 사이 '미쓰백' 등 영화에서도 아동학대 문제를 다루지 않았나. 해결책이나 법률적으로 달라진 건 없는 거 같다. 그런데도 많은 이가 계속해서 언급하고 관심이 있어 이슈가 된다는 사실은 긍정적인 사인 같다. 마음이 복잡하다.
평소에도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이 있었나?
- 이 정도는 아니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더욱 눈길이 가는 게 사실이다. 또래 아이를 보면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지 않나. 아동 학대 기사를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다. 기사도 헤드라인만 보고 넘긴다. 자세한 내용을 보면 무섭고 내 아이가 떠올라서 더욱 충격이 크다.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 같다. 많은 이들이 아동학대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같은 이유로 '고백'을 극장에서 보기 힘들어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 우리 영화는 보기 불편한 영화는 아니다. 저도 그런 걸 못 보는 타입이니 저를 믿고 (극장에) 오시면 될 거 같다. 사실 영화를 보라고 하는 것보다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영화가) 그 불씨가 되어주길 바라고.
오순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나?
- 오순은 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다. 우리 모두 트라우마가 있지 않나. 제게도 그런 면이 있어서 (오순을 연기할 때) 그런 감정을 꺼내려고 했다. 다만 어려웠던 점은 제가 어렵게 극복한 감정들을 (캐릭터를 위해) 다시 끌어올린다는 점이었다.
극 중 박하선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장면이 있다면?
- 저는 애드리브가 많은 배우는 아니다. 미리 준비해도 현장에 가면 또 달라지더라. 시나리오를 여러 번 읽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대사를) 하는 편이다. 그렇게 해야 극 중 인물이 되더라. 제 입맛대로 연기하게 되면 어느 순간, 극 중 캐릭터가 아닌 박하선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는 그대로 따라가되 캐릭터와 연애하듯 그 인물의 생각, 메시지 등을 찾아가려고 한다.
이번에 알게 된 오순의 내면과 메시지는 무엇인가?
- 보라도, 오순도 고장 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라의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보며 '이따금 섬뜩할 때가 있다'라고 말하는 게 폭력의 대물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악순환을 끊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박하선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 좋은 부모란?
- 아직 잘 모르겠다. 좋은 어른, 좋은 부모를 정의 내릴 수 없지만 어른이고 부모라면 '약자' '아이'에게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결국 자기 분풀이 아니겠나.
영화를 찍고 더욱 확고해진 거 같다
- 아이를 키우고, 영화를 찍으며 더욱 (생각이) 굳어진 거 같다. 실제로 체감하게 되면서 더욱 느껴지는 거다.
영화 '고백'부터 '산후조리원' '며느라기'까지. 결혼 후, 작품 선택의 결이 바뀌었다
-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사실 제게 들어오는 작품이 그런(기혼자의 이야기를 다룬) 내용이기도 하고, 제가 공감하고 재밌게 생각하는 것도 엄마나 며느리, 가족의 이야기인 거 같다. 젊고 (결혼과 출산) 경험이 있는 배우가 많지 않으니 어찌 보면 스펙트럼이 더 넓어진 거 같다. 저는 미혼부터 기혼까지 모두 연기할 수 있다.
앞서 말한 작품들이 모두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데. 자부심도 있을 거 같다
- 일단 작품들이 재밌었다. 미혼, 기혼, 엄마를 떠나 작품이 재밌었기 때문에 (작품에) 임했던 거다. 가장 좋았던 건 많은 여성 팬이 생겼고 공감을 얻었다는 점이다. 많은 분이 응원해주셨다. 자부심보다는 무서운 마음이 더 크다.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니까 걱정도 되고.
시나리오를 천 번씩 읽었다고 하던데
- 남편(류수영 분)이 연기가 너무 좋아졌길래 '어떻게 한 거냐'라고 물으니 '시나리오를 천 번씩 읽었다'라고 하더라. 그래서 저도 이번에 시나리오를 계속해서 읽어보기로 했다.
천 번씩 읽으면 달라지나?
- 육아하면서 제 작품, 다른 배우들 작품을 많이 봤다. 요즘 작품들은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트렌드더라. '아, 나는 연기하듯 연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듯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커졌다. 자다가 일어나서도 대사를 외울 수 있으면 암기가 아니라 연기가 되더라. 예전에는 '시나리오는 다 거짓말인데, 여기에 진정성이 있다는 게 뭔가' 싶었는데 점점 진정성을 알아가게 되더라. 그런 게 정말 재밌다. 대본을 보고 또 봐도 새로운 점이 보인다.
그러한 변화의 계기는 무엇인가?
- 내가 너무 뻔한 연기를 했구나 싶었다. 쉬는 동안 전작들이 그리워서 다시 보기를 했는데, 부족함이 크게 느껴졌다. '하이킥' '혼술남녀' 등 저의 찬란한 시절 말이다. 하하하. 생각하고 또 공부하게 되더라. '아, 나는 참 대본대로만 연기했구나.'
연기가 그렇게 재밌어졌나?
- 그렇다. 일하는 거도 어찌나 재밌는지. 예전엔 새벽 촬영이 싫었는데 지금은 '아, 새벽 공기가 참 좋다'라면서 나선다. 공백기가 저를 변화시킨 거 같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연기가 있다면?
- 오랫동안 '살인마 연기'가 하고 싶다고 했다. 연기적인 변신에 갈증이 있는 거 같다. 요즘은 의사, 검사, 변호사 같은 똑 부러지는 역할을 연기해보고 싶다. 기가 막히게 잘 할 수 있는데…. 제가 의외로(?) 똑똑한데. 하하하. 새로운 모습들을 보여드리고 싶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