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김일성 주석 사망 27주기를 맞아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은 북한 주민들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최근 유엔 고위급 정치 포럼에서 식량난과 백신 등 의약품 부족을 인정한 '자발적 국가 검토(VNR)' 보고서를 공개해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식량난과 의료시설 부족 등을 유엔에 보고한 것은 대화를 단절하지는 않겠다는 긍정적 신호로도 해석할 수 있어서다.
16일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유엔에 66쪽 분량의 지속가능발전목표에 대한 ‘자발적 국가 검토(VNR)’ 보고서를 제출했다. 북한은 곡물 생산목표가 연간 700만t이지만 2018년에는 495만t에 그쳤다고 공개하면서, 이런 수치는 10년간 최저치라고 지적했다. 2019년에는 657만t으로 늘었지만 거듭된 태풍과 홍수 등으로 지난해에는 다시 552만t으로 급감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북한은 의료·보건 시설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도 공개했다. 북한은 당면 과제로 의료 인력과 제약 기술 기반, 의료장비와 필수의약품 부족 등을 꼽았다. 또 백신과 의료기기 공급이 국내 수요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백신 대부분은 세계백신면역연합(GAVI)에 의존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촌 하수처리율도 11.4%에 그쳐 주민에게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 위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공개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내부 상황을 이처럼 상세하게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브래들리 뱁슨 전 세계은행 고문은 15일(현지시간) VOA와의 전화 통화에서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1년 6개월 넘게 국경을 봉쇄하고 외부와 단절한 북한이 자발적 국가 평가 보고서를 제출한 것은 상당히 좋은 신호로 생각된다"며 "북한이 유엔의 다자간 공동 정책을 이행할 의향이 있다는 의미 있는 행보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2018년 상황을 공개한 것은 대북제재에 대한 피해를 인정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뱁슨 전 고문은 "실제로 국제사회는 2017년 잇단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인해 부과된 국제 제재로 인해 2018년에 북한의 식량 부족 사태를 우려했었다"라며 "수십 년간 외부로부터 자료의 신뢰성에 의문을 받았던 북한이 통계자료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다만 통일부는 북한의 행보를 외부에 지원을 호소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경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유엔보고서 공개가 대북 인도지원에 대한 태도 변화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북한은 그동안 지속가능발전목표(SDSSSDGs) 이행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만드는 등 보고서 작성을 위해 나름의 준비과정을 거쳐 왔다"며 "이 보고서가 외부에 지원을 호소한 목적으로 보기는 어려움이 있다"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다만 이번 보고서를 통해 "식량과 위생, 에너지 등 국가발전 차원에서 북한이 시급하다고 여기는 우선 분야를 확인할 수 있다"며 "북한도 이런 우선순위 이행을 위해 국가 자원의 효율적 동원을 얘기하는 동시에 이런 분야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와 파트너십을 강화하겠다고 한 만큼 두 가지 부분을 다 열어놓고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 첫 보고서를 제출한 북한이 꾸준히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수립될 당시 북한 당국과 보고서 작성을 시도했던 제롬 소바쥬 전 유엔개발계획 평양사무소장은 "북한이 국제사회 일원이 되겠다는 진정성을 보이고 효과적인 외부 지원이 이뤄지게 하려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통계를 해마다 공개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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