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회 도쿄 하계올림픽 대회가 조용하게 막을 올렸다. 1조7000억원을 들여 새로 지은 6만8000석 주경기장엔 관중이 없었다. 환호와 열기가 사라진 올림픽. ‘감동으로 하나 되다’라는 진지하지만 재미없는 메시지가 개막행사를 채웠다.
대회 나흘째. 125년 올림픽 사상 초유의 무관중, 무관심, 무흥행의 3무 올림픽이 불안하게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끊이지 않고, 크고 작은 부작용이 계속 터지고 있다. 중단을 요구하는 여론이나 데모도 이어진다. 하지만 주최국 일본은 파국을 선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올림픽 파탄이 단순히 개최국 일본만의 비극은 아닐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오늘을 위해 땀 흘리며 기량을 닦아온 전 세계 스포츠인들에게 낙담과 좌절을 안겨 주고,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인류의 용기와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니겠는가? 지구촌 대운동회가 코로나 팬데믹을 넘어 무사히 치러지는 것은 모든 지구촌의 공통된 희망일 것이다.
◆ 1964년 일본 부흥 올림픽
일본은 하계올림픽 두 번, 동계올림픽 두 번, 모두 네 번의 올림픽을 연 유일한 나라다. 1964년 도쿄올림픽은 일본의 <부흥 올림픽>이었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패전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도약을 하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64년 도쿄 올림픽 비용은 당시로는 상징적 숫자로 여겨지던 1조엔. 그래서 ‘1조엔 올림픽’으로도 불린다. GDP의 3.1%를 올림픽을 위해 지출했다. 이번 2020 도쿄 올림픽 비용이 GDP 대비 0.6%라니까 5배를 더 쏟았다. 빌딩 사이사이를 이어 놓은 도시고속도로와 지하철, 현대식 호텔이 들어선 도쿄는 올림픽 이후 상전벽해의 국제도시가 되었다. 어느 나라도 미처 엄두를 못 내던 시속 200㎞의 고속열차 신칸센을 올림픽 개막에 맞춰 세계 최초로 개통시킨 것도 이때다.
64년 일본의 1인당 GDP는 836달러. 세계 25위였다. 고작 제3 세계권에 머물던 일본은 64년 올림픽 이후 연 10%를 넘는 고속 경제성장 가도를 질주, 70년대에 이미 세계 제2위의 GNP 대국으로 올라섰다. 2012년 중국에 그 자리를 내주기까지 40년을 승승장구 경제 대국의 길을 걸었다. 2006년 일본 총리가 된 아베는 패전 후 일본을 이끌었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사토 에이사쿠가 길을 놓고 이케다 하야토가 열매를 딴 64년 올림픽을 ‘일본이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 꿈이여 다시 한번... 2020년 도쿄 부흥 올림픽
201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일본은 2020년 두 번째 도쿄 하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 일본식 극진한 손님 접대방식인 <오모테나시>를 내세워 경쟁국을 물리쳤다. 하지만 오모테나시는 손님 끌기 위한 유치전략일 뿐 속내는 <도쿄 부흥 올림픽>의 재현이었다.
일본은 실제로 절박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 경제는 또 한번 잃어버린 10년의 늪으로 빠져들던 시점. 민주당 정부의 몰락으로 권좌에 복귀한 아베는 올림픽을 일본 부활의 상징으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실제로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영광의 재현을 노렸다.
하지만 시대 흐름은 이미 아베 편이 아니었다. 한때 반짝 살아나는가 싶던 일본 경제는 아베노믹스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또다시 침체의 늪에 빠지고 아베는 결국 퇴진했다. 일본은 지금 잃어버린 10년을 세 번 되풀이, 잃어버린 30년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갇혀있다.
참을성 많은 일본 국민에게는 그래서 더 2020년 도쿄올림픽이 탈출구가 되어줄 것이라는 한 가닥 소망이 간절하다. 올림픽 개최가 1년 미뤄지면서 그런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그 새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빚더미는 늘고 경기 침체는 여전히 수렁처럼 깊은데 설상가상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악재가 마치 쓰나미처럼 일본을 엄습하고 있다. 더 크고 알 수 없는 위험은 올림픽 기간 중 코로나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2020 도쿄올림픽을 제2의 부흥 올림픽으로 삼으려던 일본의 바람은 아쉽게도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 올림픽 대회는 실패할지 몰라도 올림픽 정신은 실패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결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희망을 버려서도 안 된다. 이번 올림픽은 어쩌면 지구촌에 코로나 재앙에 맞서 이기는 방법을 내려줄 기회일지도 모른다.
바흐 IOC 위원장의 말처럼 이웃과 서로 돕고 나누고 보살피는 진정한 존중과 연대의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것, 역경에 맞서고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원동력인 스포츠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 그 어떤 올림픽보다 승패를 떠나 당당하게 참여해 스포츠맨십을 뽐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코로나 재앙을 이기고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주최국 일본에게도 기회가 있다. 일본은 이제 실패에서 교훈을 찾을 때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훌륭하지만 21세기의 장인은 왜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일본 기업들이 뒷걸음질치고 시야에서 사라진 데 대한 쿨한 복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일본의 장인 정치인으로 군림해온 아베나 스가와 같은 자민당의 보수 정치인들이야말로 통렬한 자기 복기가 필요한 우선 대상이다.
일본의 오래된 비유에 기업은 일류, 관료는 이류, 정치인은 삼류라는 말이 있다. 삼류들의 낡고 고장 난 정치의식과 리더십 때문에 꼬여버린 대표적 사례가 한·일관계다. 한국의 반일과 일본의 혐한은 더 갈 수 없는 데까지 가 있다. 일본의 웬만한 서점에는 한국을 욕하고 비하하고 멸시하는 것으로 가득 찬 책을 잔뜩 늘어놓은 혐한 코너가 인기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일본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반일감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강제 징용자 배상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항복문서를 가지고 오라는 일본 정부의 시대착오적 고집을 여과없이 흘리기만 한 일본 매체들의 혐한 기조가 지속하는 한 한·일관계는 앞으로도 출구가 없다.
일본의 스가 총리가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겠다는 한국 대통령을 환영하고 두 나라 사이에 얽히고 꼬인 현안에 전향적 자세를 보이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해 일본이 향후 가야 할 미래에 대해 멀리 그리고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갖추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진정한 배경임을 일본이 깨달았으면 싶다. 올림픽이 무사히 끝나고 화창하게 갠 가을 어느 날 한·일 정상이 진정한 모습으로 만나는 그림을 그려본다.
대회 나흘째. 125년 올림픽 사상 초유의 무관중, 무관심, 무흥행의 3무 올림픽이 불안하게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가 끊이지 않고, 크고 작은 부작용이 계속 터지고 있다. 중단을 요구하는 여론이나 데모도 이어진다. 하지만 주최국 일본은 파국을 선언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올림픽 파탄이 단순히 개최국 일본만의 비극은 아닐 것이다. 지난 5년 동안 오늘을 위해 땀 흘리며 기량을 닦아온 전 세계 스포츠인들에게 낙담과 좌절을 안겨 주고, 코로나19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인류의 용기와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야말로 비극이 아니겠는가? 지구촌 대운동회가 코로나 팬데믹을 넘어 무사히 치러지는 것은 모든 지구촌의 공통된 희망일 것이다.
◆ 1964년 일본 부흥 올림픽
일본은 하계올림픽 두 번, 동계올림픽 두 번, 모두 네 번의 올림픽을 연 유일한 나라다. 1964년 도쿄올림픽은 일본의 <부흥 올림픽>이었다. ‘더 빠르게, 더 높이, 더 강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패전의 상처를 딛고 새로운 도약을 하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선포한 것이다.
64년 일본의 1인당 GDP는 836달러. 세계 25위였다. 고작 제3 세계권에 머물던 일본은 64년 올림픽 이후 연 10%를 넘는 고속 경제성장 가도를 질주, 70년대에 이미 세계 제2위의 GNP 대국으로 올라섰다. 2012년 중국에 그 자리를 내주기까지 40년을 승승장구 경제 대국의 길을 걸었다. 2006년 일본 총리가 된 아베는 패전 후 일본을 이끌었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사토 에이사쿠가 길을 놓고 이케다 하야토가 열매를 딴 64년 올림픽을 ‘일본이 가장 빛났던 순간’이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 꿈이여 다시 한번... 2020년 도쿄 부흥 올림픽
2013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일본은 2020년 두 번째 도쿄 하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한다. 일본식 극진한 손님 접대방식인 <오모테나시>를 내세워 경쟁국을 물리쳤다. 하지만 오모테나시는 손님 끌기 위한 유치전략일 뿐 속내는 <도쿄 부흥 올림픽>의 재현이었다.
일본은 실제로 절박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일본 경제는 또 한번 잃어버린 10년의 늪으로 빠져들던 시점. 민주당 정부의 몰락으로 권좌에 복귀한 아베는 올림픽을 일본 부활의 상징으로 삼겠다고 선언한다. 실제로 아베노믹스를 앞세워 영광의 재현을 노렸다.
하지만 시대 흐름은 이미 아베 편이 아니었다. 한때 반짝 살아나는가 싶던 일본 경제는 아베노믹스의 한계가 드러나면서 또다시 침체의 늪에 빠지고 아베는 결국 퇴진했다. 일본은 지금 잃어버린 10년을 세 번 되풀이, 잃어버린 30년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 갇혀있다.
참을성 많은 일본 국민에게는 그래서 더 2020년 도쿄올림픽이 탈출구가 되어줄 것이라는 한 가닥 소망이 간절하다. 올림픽 개최가 1년 미뤄지면서 그런 희망도 사라지고 있다. 그 새 비용만 눈덩이처럼 불어나 200억 달러를 넘어섰다. 빚더미는 늘고 경기 침체는 여전히 수렁처럼 깊은데 설상가상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악재가 마치 쓰나미처럼 일본을 엄습하고 있다. 더 크고 알 수 없는 위험은 올림픽 기간 중 코로나 확산세가 걷잡을 수 없을 지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2020 도쿄올림픽을 제2의 부흥 올림픽으로 삼으려던 일본의 바람은 아쉽게도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 올림픽 대회는 실패할지 몰라도 올림픽 정신은 실패할 수 없다
그렇더라도 결코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희망을 버려서도 안 된다. 이번 올림픽은 어쩌면 지구촌에 코로나 재앙에 맞서 이기는 방법을 내려줄 기회일지도 모른다.
바흐 IOC 위원장의 말처럼 이웃과 서로 돕고 나누고 보살피는 진정한 존중과 연대의 올림픽 정신을 구현하는 것, 역경에 맞서고 다시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는 원동력인 스포츠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 그 어떤 올림픽보다 승패를 떠나 당당하게 참여해 스포츠맨십을 뽐내는 것이야말로 인류가 코로나 재앙을 이기고 극복하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주최국 일본에게도 기회가 있다. 일본은 이제 실패에서 교훈을 찾을 때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 결과이다. 일본의 장인정신은 훌륭하지만 21세기의 장인은 왜 무엇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이 부족했다. 그렇게 잘나가던 일본 기업들이 뒷걸음질치고 시야에서 사라진 데 대한 쿨한 복기가 필요한 이유이다. 일본의 장인 정치인으로 군림해온 아베나 스가와 같은 자민당의 보수 정치인들이야말로 통렬한 자기 복기가 필요한 우선 대상이다.
일본의 오래된 비유에 기업은 일류, 관료는 이류, 정치인은 삼류라는 말이 있다. 삼류들의 낡고 고장 난 정치의식과 리더십 때문에 꼬여버린 대표적 사례가 한·일관계다. 한국의 반일과 일본의 혐한은 더 갈 수 없는 데까지 가 있다. 일본의 웬만한 서점에는 한국을 욕하고 비하하고 멸시하는 것으로 가득 찬 책을 잔뜩 늘어놓은 혐한 코너가 인기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일본이라면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반일감정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강제 징용자 배상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항복문서를 가지고 오라는 일본 정부의 시대착오적 고집을 여과없이 흘리기만 한 일본 매체들의 혐한 기조가 지속하는 한 한·일관계는 앞으로도 출구가 없다.
일본의 스가 총리가 도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겠다는 한국 대통령을 환영하고 두 나라 사이에 얽히고 꼬인 현안에 전향적 자세를 보이지 못하는 것, 다시 말해 일본이 향후 가야 할 미래에 대해 멀리 그리고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갖추지 못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으로부터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진정한 배경임을 일본이 깨달았으면 싶다. 올림픽이 무사히 끝나고 화창하게 갠 가을 어느 날 한·일 정상이 진정한 모습으로 만나는 그림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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