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올림픽 응원, 애국심과 타국 증오의 두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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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입력 2021-08-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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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


연일 계속되는 도쿄 올림픽 TV 중계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불현듯 타오르는 애국심을 느끼게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 선수들이 훌륭한 기량으로 메달을 따게 되면 그 이상 자랑스러울 수가 없고 한국인으로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더구나 상대국이 우리가 일종의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는 일본 같은 나라일 경우에는 그 벅찬 감격이 극에 달하고 전 국민이 열광하게 된다. 반대로 그 상대국이 우리를 이길 때는 실망감에 더해 분노와 증오의 마음까지 들게 된다. 결국 애국심이 도를 넘어 민족주의 아니면 국수주의의 영역에 이르게 된다. 특히 우리의 TV 중계가 지나치게 애국적으로 흐를 때 이러한 배타적인 민족 감정은 더욱 심해진다. 사실 올림픽이나 운동 경기를 통해 민족주의가 심화되어 국가 간 갈등이나 분쟁이 생겼던 경우는 수도 없이 많다.

19세기 말 근대 올림픽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프랑스의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시작된 올림픽은 운동 경기를 통해 전 세계가 교류하고 서로 화합하는 평화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다. 첫 아테네 대회에서는 200여명의 아마추어 선수들이 참가했는데, 헝가리 선수들만 국가대표로 참가했고 나머지는 모두 개인 자격으로 참가했다. 올림픽 헌장은 올림픽이 개인 및 팀 간 경쟁이고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또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국가 간 메달 순위 집계를 공식적으로 금지한다. 올림픽이 국가 간 우열을 확인하는 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상일 뿐이고 현실은 전혀 다르다. 현대 올림픽은 대부분 국가가 자국의 우수성을 내외에 과시하고 자국민의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한 각축장이 되었다. 메달 집계는 당연한 현상이 되었고, 좀 더 많은 메달을 따기 위해 국가 단위로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러시아는 과거에 약물 사용 금지를 어겨 국가를 대표하지 못하고 러시아 올림픽위원회를 대표한 선수단을 파견해야 했다. 또 많은 나라가 좀 더 많은 메달을 따기 위해 외국 선수들을 귀화시키고 있다. 독일은 많은 중국 탁구 선수들을 귀화시켰고, 미국은 육상 등 종목에서 동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을 귀화시켰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때는 선수의 6%가 귀화 선수였다.

올림픽이 국가 간 경쟁과 갈등을 격화시키고 자국의 우수성을 과시하기 위한 국수주의의 도구로 사용된 경우는 많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가 나치 정권을 선전하고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한 도구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 때는 팔레스타인의 테러 단체인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 11명을 인질로 잡아 살해한 바 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은 미·소 간 냉전의 와중에서 동서 진영이 서로 보이콧하는 반쪽짜리 올림픽으로 전락했다. 올림픽은 아니지만 1969년 월드컵 축구 예선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양국 간 국민 감정이 폭발해서 사상자가 생기고 결국 전쟁에까지 이른 사태는 유명하다. 그런 연유로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은 스포츠가 ‘증오의 광란(orgies of hatred)’이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또한 올림픽 정신은 스포츠와 정치를 구분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지만 이 역시 실현 불가능한 약속이다. 권위주의 정부는 올림픽 개최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국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고자 시도한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각각 수백억 달러를 들여 베이징 올림픽과 소치 올림픽을 개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 후 국내 지지도가 현격하게 상승하는 효과를 누렸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역시 당시 정당성이 결여된 권위주의 정부가 국민들의 관심을 비정치적인 분야로 돌리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태동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와 같이 올림픽은 애국심뿐 아니라 과도한 민족주의, 심하면 종족주의까지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 사실 애국심과 민족주의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와 관련, 프랑스의 드골 전 대통령은 “애국심이란 내 나라 국민에 대한 사랑이 우선이고, 민족주의는 타국 국민에 대한 증오가 우선”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친 애국심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 것은 중요하다.
연구에 의하면 스포츠 경기를 통해 민족주의가 고조되면 국가 간 갈등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냉전 당시 한 연구에서 민족주의가 강한 미국인들은 미국의 핵무장을 지지하고 대 소련 강경 정책을 선호한다고 답했다. 또한 최근 이탈리아와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민족주의가 강한 응답자들은 국제 위협이 더욱 높은 것으로 인식하고 그 결과 더욱 호전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모두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학자들은 민족주의를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첫째는 열광적(ardent) 민족주의, 둘째는 신념적(creedal) 민족주의이다. 미국인들의 경우 전자는 종교나 언어 등 자신들을 구성하는 현상을 중요시한 반면, 후자는 자유·포용성 등 자신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중시한다. 후자의 민족주의는 일종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국민들을 결집시키지만 외부에 대한 포용성도 잃지 않는다. 반면 전자의 경우는 맹목적인 애국심으로 충만되고 외부에 대해 배타적이 된다. '미국 우선(America First)'을 외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올림픽 TV 중계를 보며 한국 선수들 응원으로 열 올리는 우리의 모습이 과연 전자인지 후자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이병종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 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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