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날씨, 롱패딩을 챙겨 입고 경남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첫 목적지는 통영 ‘나폴리농원’이다. 이곳에서는 맨발로 숲길을 걸을 수 있는 특별한 체험까지 할 수 있다. 숲길을 맨발로 걷는다니 쉽지 않은 체험 기회다. 편백수 분무 소독을 하고 실내에 입장해 간단한 영상을 보고 산책길에 나섰다. 피톤치드 향기 가득한 편백 숲길 바닥은 톱밥이 깔려 있어 포근한 느낌이다. 처음에는 맨발이 어색하지만, 어느새 발바닥에 전해오는 촉감이 퍽 즐겁다.
톱밥이 깔린 모든 구간에 찌모겐 효소와 피톤치드액이 자동 분무되는 파이프라인이 설치돼 있어 사시사철 촉촉하고 위생적인 바닥을 유지할 수 있다. 편백나무 사이사이 식나무, 차나무, 야자수가 멋진 숲길을 만든다.
코스 중간중간 재미있는 체험거리도 풍성하다. 에어텐트에 들어가 즐기는 ‘에어샤워’, 바위에 낀 이끼를 관찰하는 ‘루뻬체험’, 좋은 기운을 받아들이는 ‘피라미드 기체험’, ‘잔디밭 침대(풍욕)’ 등을 할 수 있다. 이번 답사여행에서는 장거리 이동에 지친 참가자들을 위해 요가 강사가 지도하는 스트레칭 세션을 진행해 프로그램이 더욱 알찼다. 루프톱에서 즐기는 해먹체험,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는 ‘크나이프 치유 코스’도 치유의 효과를 높여줬다. 다시 실내로 들어와 편백 정유를 떨어뜨린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는 족욕으로 체험을 마무리했다.
자욱한 밤안개 사이로 호롱불빛을 닮은 가로등이 켜지자 먼 기억 속... 희미하게 남아있던 거리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났다.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내딛는 발걸음에 맞추어 잊혔던 기억이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낡은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 어둑한 방안을 가득 메웠던 이름 모를 한약재에서 풍겨 나오던 향기들. 좁은 골목길을 가득 메웠던 찹쌀떡 장수의 목소리. 40여 년 전의 그 어느 날의 밤거리 기억을 소환해준 이곳은 합천영상테마파크다.
영화나 드라마 세트장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옛 시대를 재현해놓은 거리에서 사진도 찍으면서, 영화 속 장면을 찾아 나서는 게 꽤 재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즐거움 속에 아쉬운 점이 있었다. 세트장의 속성상 가건물로 지어지다 보니 아무래도 감정이입이 덜 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 보았던 그 거리를 오롯이 느끼기에는 눈앞의 세트장이 말 그대로 세트장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 런. 데…. 이곳에서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났다. 유례 없는 야간개장을 한 것이다. 그 시대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는 세트장의 조잡함은 사라져버렸다. 밤공기의 아득함이 방문객의 이성을 앗아가 버렸다. 나는 이내 1980년대의 어느 날 밤거리에 서 있었다. 어둑한 밤거리를 거닐며 작은 골목길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어디선가 부엉이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마지막 전철이 지나간 거대한 굴다리 밑을 지나자 버드나무 아래 양장점 건물 앞에서 아름다운 핸드팬(handpan) 연주가 들려온다. 과거의 사람을 만나는 듯한 착각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마음속에 숨겨왔던 감성이 밀려 올라와 눈물로 맺혔다. 난 지금 과거의 나를 만나고 있다.
합천 영상테마파크의 야간개장과 핸드팬 연주자 꾸꾸란이 등장하는 설정은 이곳을 방문한 여행자들에게 완벽한 옛기억을 되돌려주기 위해 여행프로젝트그룹 '숨숨'이 기획한 콘텐츠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누가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서 그 맛이 달라지듯이 같은 여행지라고 해도 누가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따라서 여행자는 전혀 다른 추억을 안고 돌아오게 된다. 덕분에 세상 그 어느 곳에서도 맛보지 못했던 완벽한 과거로의 여행을 즐겼다. 합천군은 영상테마파크 야간개장을 검토 중이라 하니 무척 기대된다.
경남의 깊은 산, 오도산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숨 막힐 정도로 신성한 공기와 함께 시작되었다. 늦은 가을의 단풍에 어울리는 작은 오솔길을 따라 아침산책을 나선 건 아침 요가를 경험하기 위해서다.
바쁘다는 핑계로 몸과 마음의 외침을 등한시했던 나 자신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합천여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쉼이다. 많은 것을 들여다보지 않고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하면 된다. 싱잉볼이 전하는 고요한 소리와 가을아침이 무척 잘 어울리는 선생님과 함께 몸을 움직여본다. 그동안 돌보지 않았던 몸에 무리가 온다. 익숙하지 않은 몸짓에 수반되는 작은 고통. 그 뒤에 찾아오는 평온함이 참으로 반갑다.
천천히 아침요가를 마치고 고요한 물가에 앉아 시간을 흘려보내 본다. ‘물소리 명상’ 시간이다. 고요한 물 위에 떠 있는 단풍잎을 바라본다. 멈춘 듯 보이는 단풍잎이 작은 파동에 밀려 조금씩 조금씩 흘러내려 간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시간 속에서 마음이 함께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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