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는 '어제의빈삼년내각제축문'을 통해 성덕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드러냈다.
"내 마음은 너를 떠나보내는 것이 어렵고 힘들구나."
"바람 소리가 슬픈 밤에 술잔을 올린다. 빨리 보고 싶어도 홀연히 떠나버렸다."
"나는 너의 죽음에 대해 반신반의한다. 근심하는 사람의 마음은 썩은 것과 같다."
"졸곡을 지내고 보니 빈은 여러 가지 온갖 일을 겪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세상을 떠났다. 나는 어찌하란 말인가."
"빈이 문효세자를 낳던 날 밤에 하늘에서 비춘 붉은 빛은 바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사사로이 말하건대 죽어서 종묘에 봉안되어도 빈을 영원히 잊을 수 있겠는가."
특히 정조는 의빈성씨 묘비 뒤에도 이런 글을 남겼다.
"이로써 마음 한가운데가 참 슬프고 애가 타며, 칼로 베는 것처럼 아프다. 사랑한다. 참으로 속이 탄다. 네가 죽고 나서 나와 헤어졌다. 나는 비로소 너의 죽음을 깨달았다. 앞전에 겪은 일과 비교해도 비교할 게 없을 만큼 슬프다. 나는 저승도 갈 수 없다. 너를 생각하면 애통하고 슬프도다. 너는 진짜 이승을 떠나는구나. 문효세자의 옆에서 편히 쉬어라. 아들의 무덤에서 멀지 않게끔 아들과 어머니가 좌우에 있도록 할 것이다."
어린 시절 성덕임을 만났던 정조는 성인이 된 후 그녀에게 승은을 내리려 했다. 하지만 성덕임은 세자빈이 있으니 승은은 불가하다며 거절했다. 그 후로도 두 번이나 거절을 당했던 정조는 15년 후 30살이 돼서야 성덕임을 자신의 옆에 둘 수 있었다.
의빈성씨는 정조와의 사이에서 딸을 낳았지만 딸은 첫돌을 넘기기도 전에 사망했고, 이후 아들 문효세자를 낳았지만 문효세자는 5살이 되던 때 홍역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의빈성씨는 임신 9개월인 상태로 아들의 뒤를 따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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